기술자립의 의지와 ‘가공의 빛’으로 한국 과학사 밝혀
기술자립의 의지와 ‘가공의 빛’으로 한국 과학사 밝혀
  • 이현준 기자
  • 승인 200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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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의 건립을 통해서 김호길 학장이 한국 과학사에 기여한 바는 다음과 같다. 먼저 재미 한국인과학기술자협회(재미과협)를 통해서 외국에 유학하고 있던 한국인 과학자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국내 과학기술연구 및 교육 수준을 한단계 높이게 된다. 생전에 기술 자력과 자립을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했던 김호길 학장의 뜻에 의해서 외국에서 활동하던 중진교수들을 유치하고 그 중진교수들의 추천에 따라서 젊은 박사급 인력들을 신진교수로 임명해 원할한 연구활동을 가능케 했고, 유학 후 외국에서 연구활동을 계속하던 그전까지의 관행에서 외국수준의 연구시설을 갖추어 유학이 필요없는 대학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실행해 나갔다. 이러한 교수 임용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재미과협이다. 이 단체의 설립배경에는 먼저 60년대 세계적인 추세이던 선진국으로의 과학기술 인력유출(Brain Drain)이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과학기술계에 미국으로의 유학붐이 불었고, 또 원자력 연구원이 설립되면서 국비, IAEA 자금 등을 이용한 유학도 늘게 되어 결과적으로 60년대 말에는 재미 한국과학기술자가 2, 3천명에 달했고, 이들 사이에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생기게 되었다. 후에 71년 워싱턴 D.C에서 재미 과학기술자 69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발기인 대회가 열려, 재미과협이 탄생되게 된 것이다. 김호길 학장은 이 때의 인연으로 우리대학 설립초기 중진교수들의 대부분을 재미과협에서 유치하게 되고 과학기술 자립의 의지를 실현해 나가게 된다.

또, 94년 완공된 포항방사광가속기건설(이하 가속기)의 추진도 김호길 학장의 큰 업적 중의 하나다. 비록 완공을 보지 못하고 별세하고 말았지만, 그의 지론에 의해서 건설된 가속기는 현재도 화학, 물리, 소재분야, 전자, 화공 등에 대학원생 포함 연 600 여명의 연구인력들이 활용하여 기초겴읏?상업화에 관련된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내는 국내 과학계의 중요한 시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또, 국내 연구인력의 수준에 있어서도 가속기 건설 전 10여 명밖에 되지 않았던 방사광이용 경험자 수가 40배 이상 증가하는데 일조하는 등 큰 역할을 하여 우리나라도 방사광가속기연구 시기가 비슷한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인력풀을 갖추게 되었다. 가속기 건설 자체에 있어서 가속기 이용자의 저변 확대에 관한 문제, 또 가속기 건설 과정 중 저장링의 에너지를 1.5GeV에서 2.0GeV로 바꾸기로 결심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 등을 모두 해결하고 설득시키며 건설한 가속기의 현재의 위상을 볼 때, 김호길 학장의 뜻이 한국 과학사에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87년말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의 최신 방사광시설인 NSLS 관계자들이 우리대학을 방문하여 ‘NSLS의 설계도면과 필요부품을 다 주어도 조립조차 할 수 있는 능력이 안된다.’라고 말한 지 8년 후 95년, 포항을 방문한 ALS(Advanced Light Source)소장이 가속기를 버클리로 옮기고 싶다고 한 말에서 한국 과학과 가속기 연구의 발전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대학에 중진급 교수들이 몰려들고 포항방사광가속기의 건설이 확정된 88년은 김호길 학장이 89년도 본지 3호 신년사에서 밝힌 바 있듯이 ‘한국 기술적 과학의 원년으로 후세의 사가들이 기록할 계기를 만든 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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