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남긴 빈 좌대 앞에 서자
고인이 남긴 빈 좌대 앞에 서자
  • 박태준 설립이사장
  • 승인 2004.04.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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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은재 김호길 초대 총장10주기에 기리며
세월이 흐르는 물 같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머리칼이 희끗희끗해지는 즈음부터 자주 쓰게 되는 말이지만, 이것은 고(故) 김호길 총장을 떠올리는 나의 머리 속으로 가장 먼저 한 줄기의 서늘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현해탄을 건너온 그 충격적 비보를 듣고 망연자실하여 눈물을 흘렸던 일이 언젠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난 지가 벌써 10년을 헤아리다니…….

내가 고인을 처음 만났던 날은 20년쯤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5년 6월 4일, 효곡 주택단지 안의 포스코 영빈관. 그날 그 자리엔 나와 김호길 박사 내외, 그리고 경남 진주의 연암공전에 있는 그를 포항으로 모셔오기 위해 삼고초려를 감수했던 이대공 포항공대건설본부장이 모여 앉았다.

그 무렵의 그는 가슴에 울분을 품은 사람이었다. 물리학계에서 높은 명성을 얻은 학자로서 럭키금성사(현 LG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여 세계적 공과대학을 만들기 위해 30년 가까운 외국생활을 청산하고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불행하게도 진주의 ‘연암공업전문대학’을 4년제 대학으로 승격시키려던 노력이 좌절되고 말았던 것이다.

인생의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들 중에는 타인의 불행이 뜻하지 않게 나의 행운으로 다가서는 일이 포함되는데, 어쩌면 그날 그 자리는 진주의 불행이 포항의 행운으로 성큼성큼 다가선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포항공대를 이끌어나갈 선장으로 ‘김호길’을 명백히 선택한 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흔히 완벽주의자라고 부른다. 아마도 매사를 면밀한 과학의 눈으로 통찰하는 나의 사고방식이 만들어준 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의 나는 마치 시인의 시적(詩的) 영감처럼 나의 혼에 깃드는 육감에 따라 전격적으로 결심을 세우기도 한다. 김 박사를 포항공대의 선장으로 딱 찍었던 일도 단 한번의 만남으로 주저 없이 결정한 경우였다.

포도주를 한 병씩이나 비웠던 그 운명적인 초여름의 저녁, 김 박사가 나에게 남긴 첫인상은 과학과 공학으로 조국에 기여하고 싶다는 뜨거운 사명감과 그에 어울리는 강력한 자신감이었다. 내 옆의 이대공 본부장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다시 말해 초면의 나에게 결례로 비칠 정도로 말씨에도 거침이 없었다.

“칼텍(CALTECH)을 봤어요. 바로 그런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을 만들고 싶은 겁니다”라는 나의 구상을 들은 그가 즉시 보인 반응은 “쇠만 만들 줄 아시는가 했는데 제철회사 회장님이 대학에 대해서도 뭘 좀 아시네요.”라는 것이었다. 제법 유식한 말씀을 하신다는 뜻이었는데, 포항공대를 설계하는 단계에서 미리 켈리포니아공과대학을 찾아갔던 나의 치밀한 준비성을 몰라서 내놓은 소리였지만, 오히려 나는 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사명감을 확인하는 장면이어서 이 결례에 더 기분이 좋아졌다. 또한 그는 포스코 경영진이 들었으면 ‘너무 기고만장하시는군’이란 핀잔을 돌려받았을 이런 큰소리도 쾅쾅 떠들었다.

“만약 제가 포항에 온다면, 지금은 포항제철 부설 포항공대지만 나중에는 포항공대 부설 포항제철이 될 겁니다.”

그리고 김 박사는 학사운영에 관한 전권을 자신에게 일임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를 신뢰했기에 사립학교법에 보장된 재단이사장의 권한을 그의 손에 맡겼다. 교수 초빙에 대해서도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당시의 막강한 인물이 나에게 워낙 간곡하게 교수 채용에 관한 부탁을 해왔을 때, 나는 김 총장을 시험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는 내가 건넨 이력서에다 ‘불가’란 빨간 딱지를 붙여 돌려줬다. 나는 그가 고마웠다. 그 다음부터 똑같은 청탁이 들어오면 그 일을 들려주고 “우리 총장한테 직접 부탁해 보라”고 발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호길, 그는 어느 날 홀연히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그가 떠난 그 길은 그가 말한 대로 ‘신도 바꿀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기에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도 인간의 자취는 남는 법이다. 우리에겐 포항공대가 남아 있고 방사광가속기가 남아 있다. 그리고 미완의 너무 중요한 사명감이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인은 말했다. 영일만 바다가 5대양 6대주로 뻗어 나가듯 포항공대의 명성이 지구촌 방방곡곡으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고 김호길 총장 10주기를 맞은 모든 포항공대인은 그를 기리는 무은재기념도서관 앞의 빈 좌대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그의 간절한 염원을 담았던 저 육성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설립자로서의 당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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