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엠바고 파기는 명백한 잘못
[집중취재] 엠바고 파기는 명백한 잘못
  • 황정은 기자
  • 승인 2004.0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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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수 팀의 논문에 우리 시간으로 13일 오전 4시까지 걸려 있던 엠바고를 중앙일보 홍혜걸 기자가 파기해버려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학술지에 실릴 논문은 어디에도 발표된 적 없는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논문 게재가 최종 확정되는 시점까지 언론이 보도를 자제하는 것이 학계에서의 통상적인 엠바고다. 그런데 홍기자가 하루 앞선 12일 특종으로 보도함으로써 엠바고가 깨졌다. 워낙 중요한 논문인지라 Science 인터넷판에는 게재되고, 인쇄판에는 기사를 통해 소개되었으나 논문 자체는 삭제당했다. Science는 홈페이지에 “홍기자가 엠바고를 파기함에 따라 엠바고를 해제한다. 유감이다.”라는 요지의 공지를 올렸다. 새로운 것을 싣는다는 학술지의 권위를 훼손당했기 때문에 Science가 유감을 표시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하루 먼저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 홍기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Science로부터 엠바고를 통보 받았음이 확실한데도 황교수 팀으로부터 엠바고를 요청받은 적이 없어서 먼저 보도했다는 홍기자의 주장은 과학부 기자로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야기다. 우리 국민의 하루 먼저 알 권리가 중요한지, 학술지의 원칙이 중요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연구자는 엠바고가 깨지면 논문 게재가 취소되거나 강등당하는 피해를 입는다. 또, 학술지와 학계는 연구자가 인기몰이를 위해 일부러 언론에 정보를 흘린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워 한다. 2002년 위암억제 유전자를 발견, Cell에 발표한 배석철 교수는 동아사이언스 기사를 통해 “홍기자가 당시 엠바고를 어기는 바람에 Cell로부터 항의를 받고 해명하느라 곤욕을 겪었다”고 밝혔다. 엠바고 파기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태도가 언론에 만연한다면 연구에 많은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연구자들이 기자를 상대로 보안유지에까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엠바고를 지킴으로써 권위있는 학술지에 국가와 개인의 명예를 드높일 훌륭한 논문을 내려는 연구자의 의욕을 해치지 않는 것이 모두를 위해 현명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