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포항공대에 바란다] 대학 변화의 선구자 되기를
[2001년 포항공대에 바란다] 대학 변화의 선구자 되기를
  • 오세정 /서울대 물리 교수
  • 승인 200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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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언론들의 지나친 호들갑 덕분에 우리나라의 21세기는 한 해 먼저 찾아온 감이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2001년이 21세기의 시작입니다. 포항공대도 어언 개교 14주년을 넘겼으니, 사람으로 따지자면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던 유아기를 지나 자기 나름대로 고민을 시작하는 사춘기로 들어가는 나이가 된 셈입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사춘기가 중요하듯이, 포항공대도 앞으로의 몇 년이 장기적인 발전을 위하여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사실 지난 10여 년 간 포항공대가 한국의 대학 사회, 더 나아가 교육계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내 최초로 연구중심대학을 목표로 하는 사립대학교로서 설립되었고, 시설이나 조직, 운영 방식 등이 그 목표에 손색이 없는 선진국 수준으로 유지되었기에, 침체되어 있던 한국 대학사회에 대단한 충격을 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포항공대의 앞으로의 갈 길이 지금까지처럼 순조로울 것이라고 낙관할 수만은 없어 보입니다.

우선 시설과 기자재 등의 투자 면에서 국내대학 중에서 포항공대가 가지고 있던 압도적인 우위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교육과 문화의 서울 집중현상은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추세입니다. 이에 따라 우수한 학생과 교수의 유치가 과거보다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막강한 후원자의 역할을 해 오던 포항제철이 민영화되면서, 포항공대를 지원할 수 있는 여력과 운신의 폭이 좁아질 위험성도 보입니다. 이렇게 우호적이지 않은 외부 여건의 변화에 한 발 앞서서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 여건의 변화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직원과 학생 등 포항공대의 내부구성원들이 그 동안에 이룬 실적에 만족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분위기에 휩싸일 위험을 경계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포항공대는 연·고대와 같은 막강한 선후배조직이나 동창회도 없으며, 서울대나 과학원처럼 무조건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교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으로 경쟁을 이겨나가야 하는 작은 규모의 대학이기에, 조금만 방심하면 여태까지 쌓아온 실적도 무너져 내릴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를 추구하며, 기존의 대학을 선도하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포항공대의 이러한 전향적 자세는 한국의 대학 사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서울대는 너무나 커진 몸집 때문에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 시의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고, 정부의 지배를 받는 과학원은 그 나름대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한국 대학의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하는데 있어서는 포항공대만이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변화하는 것만이 영원할 수 있다”는 말도 있듯이, 포항공대가 21세기에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여 한국의 대학 변혁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