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포항공대의 지배구조 개선과 미래 발전방향
[기고] 포항공대의 지배구조 개선과 미래 발전방향
  • 장현준 / 인문사회학부 방문 교수, 경제학
  • 승인 2003.06.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스코 경영진-엄밀히 말하자면 포항공대 재단이겠지만-과 공대간에 총장선임을 놓고 너무 오랜 기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는 단지 총장선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직자 임면에 관한 인사권의 귀속등 대학행정 전반에 걸친 재단과 대학간의 이견을 보이는 문제라 사태는 표면에 나타난 갈등보다 심각하게 보인다. 이제까지 포항공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해 온 배경이 되었던 양자간의 협력관계는 어떻게든 복원되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바람이다. 필자는 지난 1년간 포항공대의 방문교수로서 이 문제를 방관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면서 특히 비과학도의 입장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이 문제를 최근 한국사회의 각분야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지배구조의 개선 차원에서 접근해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이방인’이 본 포항공대의 모습

외환위기 이후 한국기업과 금융기관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경험했고 국제규범에 적합한 지배구조의 구축작업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그 와중에서 터져나온 SK글로벌사건은 아직도 선진 지배구조의 정착과 투명한 경영이 한국적 현실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낙후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합리적인 경영풍토를 만드는 것은 민간기업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정치권, 정부, 은행, 검찰, 대학, 노조등 영리적 조직이나 비영리 조직 혹은 공공조직을 망라해서 권력과 재산권을 배분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적절한 감시와 통제기능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경영진에 의한 비효율과 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관행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는 반드시 서구인들이 아시아사회를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으로 폄하했던 데서 나타나듯이 서양에는 없는 일이고 아시아에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엔론의 분식회계사건이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사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회가 우리보다 앞서가는 이유는 사고가 터지면 교훈을 얻고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를 고치는 노력을 과감하게 그리고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이론에서 주인-대리인(principal-agent)문제라고 정리된 문헌들은 바람직한 지배구조의 정착이 왜 조직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이론을 포항공대와 포스코와의 관계에 적용시켜 보면 미래에 어떻게 개선방향을 찾아볼 수 있는지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양자의 관계에서 포스코는 기업으로 치자면 주주에 해당되고 실제로 대학 재단(Board)을 구성하고 있다. 포항공대의 총장과 처장진은 전문경영인(CEO)에 해당된다. 포스코 경영진이 직접 대학 교육행정을 담당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처음부터 자신들이 직접 경영일선에 나섰을 것이다.

최근에 진행된 재단에 의한 직접 개입은 이제까지 포스코가 취했던 방임형 경영감시형태에서 크게 변화한 것이다. 문제는 그 조치가 이 대학의 미래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이다. 그보다는 재단의 구성멤버를 외부전문가로 교체하고 총장의 대우를 크게 늘리면서 책임을 더 무겁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즉 세계적인 대학에 걸맞는 대우를 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이 선진적인 감시방법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지배구조 선진화가 발전 앞당길 것

같은 맥락에서 최근 우리 기업의 경우에도 CEO에게 스톡옵션을 주는 등 보상체계를 바꾸고 그 대신에 행정처장에 의한 감독보다 재단이사회 내에 감사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정처장에 의한 실무개입은 교육부가 국립대학의 사무처에 직원을 파견하는 과거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래서는 CEO가 자율적으로 경영을 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나 우리나라에서나 민간기업이나 공공조직에 이르기까지 CEO 1인의 능력에 따라 조직의 흥망성쇠가 결정되고 조직원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사회는 믿을만한 CEO를 선정했으면 모든 힘을 실어주고 사후성과를 효율적으로 감독하는 것이 선진 지배구조의 모습이다.

포스코는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기업의 지배구조도 선진적인 구조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포항공대의 지배구조도 차제에 선진화시키는 것이 여러모로 보아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포스코가 포항공대에 지금까지 지원한 투자액은 자회사에 투자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사회적 공헌도가 너무 크다. 포스코가 국민의 성심어린 지원과 참여(물론 군사정부의 자원집중배정 형태였지만)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듯이 포항공대가 이제 모범적인 대학경영을 위한 지배구조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이는 필자같이 공대를 바람이 스쳐가듯이 지나가는 나그네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