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특집] 기혼 대학원생의 5월
[가정의 달 특집] 기혼 대학원생의 5월
  • 황정은 기자
  • 승인 1970.01.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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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안의 행복한 가정을 바란다

신소재과 박사 3년차 이유환씨는 어제 새벽 2시 반에 퇴근하여 오늘 아침 9시 반에 연구실에 나왔다. 오늘이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지만 국가지정 연구실 사업 서류심사가 코앞이라 전화로 아내와 자주 연락만 취할 뿐 오늘도 연구실에서 바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씨는 신혼 초에도 학회 등의 이유로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 별로 없어 아직도 아내의 잔소리를 듣고 있다. 연구실에 따라, 개인적인 특성에 따라 생활상은 다양하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기혼 대학원생의 생활이다.

무자식 상팔자라고 자식이 생기면 고생문이 더욱 활짝 열린다. 화학과 석사 2년차 김명옥씨는 좀 특이한 경우다. 군 복무중인 남편이 있는 김씨는 월 15만원씩 관리비를 내야 하는 기혼자 아파트 대신 대학원생에게는 공짜로 주어지는 대학원생 기숙사를 택해 거주하고 아이는 친정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지금은 베이비 시터와 어린이집이 있기에 기혼자 아파트에서의 육아가 가능해져 대학원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J씨도 출산 후 첫 6개월 동안은 친정에 아이를 맡겼다.

한편,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를 낳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연구실 지도교수나 연구실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은 없지만 젊은 대학원생으로서는 눈치도 보이고 일 욕심도 나게 마련이라 임신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대학원생 부부도 있다. 성공적인 임신과 출산을 위해서는 출산 예정일을 그 해의 가장 덜 바쁜 때로 맞추는 기술(?)이 필요하다. J씨는 “전 다행히 방학 기간에 출산이 맞춰져서 2개월 쉬었어요. 다른 기혼자들은 보통 출산 전에 할 수 있는 일들은 미리 해놓고 페이퍼 워크(Paper work)만 남겨둔 상태에서, 쉬면서 틈틈이 페이퍼 워크를 처리할 수 있도록 계획하죠.”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출산 직전까지 연구실에 나가다가 출산 후에도 채 한 달도 쉬지 않고 연구실에 다시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산모와 태아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화합물을 다루는 연구실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 부부는 항상 피임을 해야 하고 명확한 가족계획을 세워야한다. 화학과 김명옥씨는 “출산을 하려면 최소 1년은 휴학해야 해요. 유해할지도 모르는 화합물에 아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면 먼저 휴학을 하고 임신해야 하고, 임신 중에도 연구실에 갈 수 없거든요.” 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모 남편의 출산 휴가나 여성의 생리휴가는 산모가 몹시 위독하다거나 심한 생리통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경우 등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언감생심, 말도 꺼낼 수 없는 실정이다.

물론 대학원생은 어디까지나 학생이고 노동자가 아니다. 그리고 캠퍼스에 둥지를 튼 부부들의 가정생활이 어려운 데 대한 원인 제공에는 대학원생 스스로의 학업과 가정 이루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욕심도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대학원생들이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학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대학원생들이 학업과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학교는 기혼 대학원생들에게 아파트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등 캠퍼스 안의 가정을 위한 환경은 잘 조성해 놓은 편이지만 해외 유수 대학에 비해 대학원생을 위한 탁아소를 비롯한 시설 및 제도 면에서도 미흡하고, 대학원생이 가정생활을 챙기면서 학업을 해 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캠퍼스 분위기도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고 한 유학 경험자는 지적한다.

캠퍼스 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여러 대학원생들을 만나보고, 학업에서의 성공을 위해 결혼과 출산, 육아를 포기하는 대학원생이나 가정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대학원생이 없기를, 그리고 학업과 가정에 모두 충실한 슈퍼맨이 되기 위해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을 쏟아 붓고 있는 대학원생이 조금만 더 편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