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포항공대 발전을 위한 제언
[기고] 포항공대 발전을 위한 제언
  • 장수영 / 산공 교수
  • 승인 2003.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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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이 없는 세대는 부패한다

Against the wind

“연산 60만 톤 규모의 제철소, 그만한 철강수요가 없을 한국에서 추진하는 포항제철 건설은 현실성이 없는 계획이다”라는 이유로 외국 자본 투자를 얻어내지 못한 포스코는 결국 한일 국교 정상화 조건으로 받은 일본 자본을 바탕으로 연산 2,600만 톤의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지방대는 그저 지방대일 뿐이다. 포항공대가 국내 최정상에 오른다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라고 교육부 고위 관리가 호언 장담했지만, 이제 포항공대를 서울대와 과학기술원의 위협적인 경쟁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시류와 세간의 가벼운 입 놀림에 굴하지 않겠다는 정신이 오늘의 포스코와 포항공대를 이 땅에 있게 했다. 실로, 밀려오는 시대의 물결을 거슬러 성공을 일궈내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었고, 우리 모두의 가슴을 뛰게 하는 존재의 의미였다.

청와대와 포스코

5.16의 주체 세력에 의해 국운이 좌지우지되던 시절. 포스코인들의 땀방울로 축적된 부는 집권 공화당의 정치자금으로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박태준 회장 이후, 청와대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는 새로운 회장을 맞았다. 국가 경제의 번영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대통령에게 “우리 경제의 견인차 중 하나인 포스코의 지휘권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라는 문제는 너무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의 중요성 때문에 포스코 회장 선임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이라고만 보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사실, 매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청와대 주인이 누가 될 것인가?”에 포스코 사령탑이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했던 것은 포스코의 굴레였다.

포스코와 포항공대 재단

“포스코의 회장이 바뀌면, 포항공대 재단 이사장이 바뀐다.” 그러니, 포스코를 얽어매는 청와대-포스코의 사슬의 한쪽 끝에 포항공대 재단이 얽혀 있는 셈이다. 결국 포항공대의 운명이 청와대 주인에 따라 바뀌는 형세다. 지난 십 수년의 포항공대 재단 역사에서, 포철 회장이 재단 이사장 직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사장들도 현직에서 물러난 포스코 회장들이었다. 포항공대 개교이래로, 포스코는 포항공대에 1조 이상의 막대한 거금을 투자했다. 그러니, 포항공대는 포스코에게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또, 포스코가 포항공대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재단에 영향을 주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 오히려 마음 깊이 감사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그러나, 최근에 있었던 ‘총장 선임 파동’을 돌아보면, 우리는 작년 말에 있었던 대선결과를 기다려야 했고, 대선 후에도 수개월을 포스코 주주총회의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이런 파행이 꼭 있어야 하는가? 포항공대 재단은 좀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로 변화할 수 없는 것인가?

포항공대 재단 - 포항공대

포항공대 재단 이사장은 포항공대의 사령탑에 대한 인사권을 대한민국 사립학교법과 포항공대 재단(http://www.postech.ac.kr/postef/) 정관에 의해 보장 받는다. 주식회사 주주총회에서 그 회사의 사령탑을 선임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포항공대를 ‘소유’한 재단은 포항공대 ‘경영’의 수장을 선임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통해 경영진은 소유 주체에게 책임을 다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자주적인 노력을 하고, 소유 주체는 이를 정기 혹은 비정기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니 겉보기에는 매우 바람직한 모양새이다.

그러나,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기업의 총수와 달리 포항공대 재단에서 선임된 총장은 매우 제한된 인사권의 한계라는 굴레를 쓰고 있다. 작년 ‘총장 선임 파동’의 와중에 포항공대의 총장이 부재중이던 시절, 포항공대 재단은 총장이 가진 처장 임명 권한을 이사회로 ‘회수’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이제 총장은 재단의 허락 없이는 모든 처장을 임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교무처, 기획처, 연구처, 학생처장들로,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총장의 잘못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 이와 같은 변화의 이유였다. 이제 포항공대의 총장은 자신의 임면에 관한 재단의 권한에 대한 책임을 가짐은 물론 자신의 측근에 배치된 처장들의 견제를 넘어야 하는 추가적인 굴레를 쓰고 있는 형세이다. 혹자는 “포항공대 대학 조직표 상에 엄연히 하부 직위인 처장에 대한 인사권이 없다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하며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학의 혁신과 발전의 가속화를 위해 총장의 민첩한 의사결정과 실행이 필요할 때에는, 어느 정도의 반대와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총장과 각 처장들이 ‘한 팀’으로 일사분란 하게 움직여야만 할 때도 있다. 그러한 ‘하나됨‘과 ‘순발력’의 ‘정신’에 취하여 우리는 이곳에 모여 밀려 오는 세파의 바람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던 것 아닌가?

포항공대 행정처장

처장 인사권과 관련하여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행정처장의 인사다. 사실, 처장급 이하 포항공대 전 교직원에 대한 인사권은 총장에게 있다. 그러나, 총장의 인사권 집행을 위하여, 임직원을 평가하고, 인사 초안을 만드는 일은 행정처장의 몫이다. 이런 행정처장의 선임은 개교 이래로 변함없이 모두 재단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모두 이사장의 교체와 때를 같이 했던 것은 물론이며,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부 인사의 영입이었다.

물론,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관행이 그렇고, 국법인 사립학교법이 이러한 재단의 권한 행사를 보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재단 이사장의 결심만으로 행정처장 인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재단 이사장이 임명한 행정처장이 포항공대 행정 전문화를 위한 자격을 갖추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지난 십 수년간 포항공대 행정처장은 교육, 특히 대학교육에 대해서는 전혀 경험이 없는 인사들이 임명되었다. 그저 포철 교육재단에서의 경험 정도로 국내 최고, 세계 정상급을 지향하는 포항공대의 비전에 걸맞는 대학행정을 일구어 낼 전문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십 수년의 짧은 역사 속에 내부 직원이 행정처장이 될 만큼 경력을 쌓을 수 없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 행정처장이 외부에서 영입되었던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젠 학교 행정경력이 이십 년 이상이 되는 직원들도 많이 있으니, 이제 서서히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둘째, 한 지붕 세 가족의 형세로, 학생, 교수, 직원 그룹이 나누어지는 모양을 가속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이다. 행정처장이 갖는 인사에 대한 영향력을 바라보아야 하는 직원들은, 재단을, 그리고, 그 너머의 포스코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만에 하나 이해 득실이 대립될 때, 직원과 교수 그룹간의 불화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사실, 학생은 영원한 독립 조직이어야 한다. 학생 집단은 사회의 비 기득권 세력의 선봉에서, 작게는 대학의 변화를 위해, 크게는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오염되지 않은 참신한 운동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의 자주성을 위한 활동은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직원과 교수 그룹의 분리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두 그룹이 “나는 나 나름대로의 길”을 간다면 대학의 발전 원동력은 크게 손상받게 된다. 비록 심하게 대립하지 않더라도 이들간에 약간의 불협화음이라도 생긴다면, 대학 행정업무 효율은 크게 떨어질 것이며, 연구 및 교육에 있어 포항공대가 가진 대외 경쟁력에 커다란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포항공대 미래에 대한 나의 소망

미래를 바라보며 난 이런 꿈을 꿔본다.

꿈 하나. 청와대의 영향권을 완전히 벗어난 포스코의 주총을 보고 싶다. 그리하여, 더 이상, 포항공대 재단이 최대주주가 되어 주지 않아도 포스코의 경영진은 소신껏 주주들을 위한 가치경영을 할 수 있도록.

꿈 둘. 세계 정상 사립대학들의 재단 이사회와 같이, 포항공대 재단의 정관이 개정되어, MIT와 Stanford대의 경우처럼 이사회에 작게는 10%에서 많게는 30%까지 포스텍 동문이 자리하는 것을 보고 싶다.

꿈 셋. 현 포항공대 재단 정관에는 포스코 대표이사가 이사로 당연직을 하게 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포스코 회장이 재단 이사장을 하는 것은 정관 규정 사항이 아니다. 그러니, 대학교육과 첨단 연구를 이해하는 전문가가 이사장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꿈 넷. 행정처장이 재단 이사장에 의해 ‘낙하산’식 인사로 임명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직원 혹은 외부 인사라 하더라도, 교육 및 연구행정 전문가가 선임되는 것을 보고 싶다. 이렇게 되려면, 행정처장에 대한 처우도 지금과 달리 다소 조정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꿈 다섯. 재단이 임명한 총장은, 주식회사의 주주총회에서 임명된 대표이사와 같이 모든 책임을 지고 행정처장을 포함한 모든 처장 후보를 선정하여, 자신의 행정팀 구성안을 만들고, 재단 이사회에 상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은 세찬 바람이 몰려 오는 듯한 현실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가까운 곳만을 본다면, 현실에 타협하는 못난 형국을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의 바람이 몰려 오더라도 고개를 들고 바람을 거슬러 멀리 바라보자. 미래에 대한 비전은 우리가 겪는 어제 오늘의 일상사의 외연(Extrapolation), 그 이상의 것이다. 비전, 곧 멀리 바라보며, 간절히 바라는 바람이 없다면, 우리는 지혜로울 수 없다. 지혜를 잃게 되면, 우리는 부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