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에게 드리는 글] (교수) 은퇴를 생각하며 사는 인생
[졸업생에게 드리는 글] (교수) 은퇴를 생각하며 사는 인생
  • 김강태 / 수학 교수
  • 승인 2002.02.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월은 정말 쉬지 않고 흐르는 것이로군요. 해마다 맞이하는 일이지만,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머물던 자리는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새 여정을 찾아 떠나는 졸업생들의 앞날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빌며 손을 흔들어 주는 날이 금년에도 어김없이 다가오니,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또다시 새삼스럽게 가슴을 적십니다.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면, ‘그건 어른이 되어 보면 알게 된단다’라는 말로 대답을 회피하지 않습니까?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질문의 답은 알게 되기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의 답은 세상 어느 누구도 자기에게 쉽게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어른이 되어 보면 안다는 대답은 현명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제 졸업생 여러분이 우리 ‘어른’의 반열에 끼게 되었군요. 환영합니다.

제가 대학원 졸업 직후 미국에서 조교수로 부임하였던 지난 14년 전의 기억이 지금 새롭습니다. 학생 때에도 한 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학교로 진학하며 새로운 인생을 설계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 때에 제가 받았던 신선한 충격은 부임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다가왔습니다. 은퇴를 위한 퇴직금 및 보험 등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하기 위한 약속을 하라는 통지와 함께 말이지요. 부임한지 겨우 일주일인데 수십 년 후에 다가올 퇴임을 생각하라니요!

저는 가끔 중국 고전 <삼국지연의>의 삼고초려 부분을 떠올리곤 합니다. 유현덕이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그 유명한 부분보다는, 이야기의 마무리 부분에 제갈공명이 남양의 본가를 떠나 유비 현덕과 출사할 때에 아우를 불러,
“사람은 나아갈 때에 물러나올 길을 먼저 생각하여야 하는 법이란다” 라는 말과 함께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집안을 잘 돌보라고 당부하던 대목이랍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매사에 끝을 헤아려보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지혜가 제게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일에 쫓겨 식음을 잊고 뛰기도 하고, 때로는 눈앞에 펼쳐지는 엄청난 거래 때문에 이성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지금 하는 일’에 깊이 빠져서 그 당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가장 큰 이익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며 미친 듯이 살아가는 것이 흔히 보는 인생의 모습이겠지요. 하지만 때로는, 잠시 손을 멈추고 이 일의 결과가 자신의 은퇴 시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솔직하고도 냉정하게 생각하여 보는 것도 뜻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프로기사들이 바둑 한 판을 둘 때에, 각 부분마다 각기 최선인 여러 부분 전술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 판의 구도가 바뀌게 되며, 결국은 각 부분마다 선택한 전술의 합으로 나타나는 전 판을 성공적으로 구성한 편이 승리를 누린다고 하더군요. 인생도 길다면 긴 것인데, 인생의 각 시점에서 ‘지금 하는 일’이 중요하며 최선의 전술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과연 이 일을 이 순간에 이렇게 하는 것이 자기 인생에 어떤 파급 효과를 남길 것이며, 마지막 은퇴 시에는 이로 인한 내 인생의 모습이 어떻게 되어 있을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눈앞에 보이는 ‘지금의 이익’을 취할 것인지 취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각자에게 달린 것이니까요.

선택이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오래 전 어느 대학교 졸업식에서 어떤 연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대학과 같은 명문대학을 졸업하는 여러분의 앞길은 비교적 순탄할 것입니다. 대개 두 가지 길이 펼쳐지는데, 그 첫째는 여러분을 원하는 ‘줄’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면서 보수도 많이 받고 인생도 즐길 수 있는 길입니다. 이런 길을 가려면 자신의 양심의 선택과 창의적인 취향을 접어두어야 할 때가 많지만, 은퇴 후에도 돈이 수중에 상당히 남아 있어서 골프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한 길은 첫 번째 길과 외양은 비슷하지만, 내용이 다릅니다. 즉,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자신의 인생을 보람있는 것이 되도록 설계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려면 노력이 많이 들고, 창의력과 개척자의 정신이 필요하며, 괴로울 때도 있고, 때로는 눈앞에 다가온 이익을 밀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여러분께 두 번째 길을 가라고 권하고 싶군요. 그 쪽이 경쟁률이 훨씬 낮거든요.”

포항공과대학교의 문을 나서는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답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