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엔지니어가 대접받는 사회를 꿈꾸며
[특별 기고] 엔지니어가 대접받는 사회를 꿈꾸며
  • 이인식 / 과학문화연구소장
  • 승인 2001.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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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한국 과학자 상
1999년 10월 어느 날, 포항 공항으로 나를 마중 나온 학생은 외모가 단정하고 예의바른 청년이었다. 학교로 가는 승용차 안에서 그 학생은 난생 처음 와본 포항 시내를 열심히 곁눈질하는 나에게 포항공대 학생회가 주최하는 사흘 동안의 형산 학술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축제의 표어는 ‘모래 속의 바늘’이었다. 우리나라 옛 속담인 ‘모래 속에서 바늘찾기’에서 따온 말이다. 이 속담은 ‘해내기 아주 어려운 일이거나 불가능한 일’을 빗대는 경우에 사용된다. 그러나 자석을 활용한다면 모래속에서 바늘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요컨대 자석을 이용할 줄 아는 학구적 태도가 있으면 속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얼마든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모래 속의 바늘’을 표어로 정했다는 설명이었다. 국내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설립된 명문대의 학생들다운 발상임에 틀림없었다.

2년전 어느 가을날에 대한 기억

나는 학술제에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다른 대학에 특강을 나갈 때도 항상 그랬지만 박사학위도 교수경력도 없는 나를 연사로 불러준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았다. 내가 부탁 받은 강연주제는 <과학대중화와 엔지니어의 역할>이었다. 나는 문득 학술제 행사의 유일한 강연회에 내가 초빙된 까닭은 엔지니어로 20년 넘게 월급쟁이를 한 끝에 과학저술가로 변신한 내 삶의 궤적이 ‘모래 속의 바늘’이라는 표어가 드러내는 이미지에 부합되었기 때문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도착하여 학술제 준비위원회 간부학생들과 점심을 하면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훌쩍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한 학생은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누나 덕분에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빨리 취직해서 돈을 많이 벌어 효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 30년 전의 나의 친구들도 그 학생처럼 가난했지만 효심이 지극했다. 다른 학생은 우리 사회가 엔지니어를 대접해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교수가 되면 모를까 직장생활을 할 경우 장래가 없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너나없이 고시 준비에 열을 내는 세태를 이해할 것 같다고 푸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자연계 대학에 진학하려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응시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를 접할 때마다 나는 그 학생을 떠올리곤 한다. 그 학생의 불만 속에 자연계 지원 급감 현상의 원인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1995학년도 전체 응시자 75만 8천명 가운데 자연계열 응시자는 32만 7천명으로 43.1%를 차지했으나 그 비율이 해마다 줄어들어 99학년도 40.1%, 2000학년도 34.7%, 2001학년도 29.5%를 나타냈다. 2002학년도에는 전체 73만 8천명 가운데 불과 26.9%인 19만 9천명이 자연계열을 지원할 것으로 잠정 집계되었다. 2002학년도의 인문계열 지원비율은 56.4%로 자연계열의 두 배를 훨씬 웃돈다. 1995학년도에 인문계와 자연계의 지원비율이 1대 1에 가까웠으나 2002학년도에 2대 1을 넘을 정도로 자연계를 기피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계열 지원자가 해마다 주는 까닭

자연계 지원자 감소 현상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누구나 맨먼저 거론하는 것은 인문계 출신 중심으로 지도층이 짜여진 왜곡된 사회 구조이다.

예컨대 공직사회에서 자연계열 출신의 비율이 매우 낮다. 과학기술부의 <이공계 대학 지원자 감소대책> 자료(2001년 8월)에 따르면 자연계열 출신은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의 24%, 3급 이상 공직자의 26%에 불과하다. 요컨대, 과학기술이 국가 발전의 성패를 가름하는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의 핵심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행정부 안에 과학기술 전문인력이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실정인 것이다. 이처럼 자연계열 출신의 사회지도층 진출이 어려운 여건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자연계열에 지원하지 않고 육법전서 따위를 암기하는 고시 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2000년 여름에 개최된 한국 공학한림원의 공대 출신 최고경영자 모임에서 공학도들이 국가의 정책 결정에 나서야 한다는 볼멘 소리가 쏟아져 나왔겠는가.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그들로서는 국가의 정책 결정이 기술 전문가들의 의견은 도외시한 채 전문 식견이 없는 정치인과 경제관료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학생들의 과학기술 분야 기피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이공계 대학 진학자가 줄어들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위상이 높지 않은 나라가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형산학술제 준비위원 학생과 함께 강연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노벨상을 받은 몇몇 과학자들의 흉상을 보았다. 그런데 2개의 석대에는 흉상이 비어 있었으며 <미래의 과학자>라는 명패가 붙어 있을 따름이었다. 안내하는 학생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우리나라 사람을 위해 미리 만들어 둔 자리랍니다”
나는 과학 대중화에 대한 강연을 마치고 다음과 같은 얘기를 덧붙였다.
“공대 졸업 후 인생 행로는 학문의 길과 취업, 둘 중 하나이다. 기업체에 들어가면 포항공대처럼 명문대를 나왔건 그렇지 않건 중요하지 않다. 신입사원은 누구나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장생활은 지식 못지 않게 남과 어울리는 친화력과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엔지니어들은 인문계열 출신보다 적응력이 떨어진다. 전문지식 문제만 해도 그렇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후배들에게 추월당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엔지니어일지라도 여느 직장인처럼 40대부터 예외없이 위기를 맞게 된다. 게다가 국내 기업은 기술직보다 영업직에게 임원 승진의 우선권을 준다. 그렇다면 연구개발을 천직으로 하는 엔지니어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해답은 축제의 표어인 ‘모래 속의 바늘’에 있는 것 같다.”

모래속의 바늘을 찾는 사람들

나는 강연을 마치고 나오면서 대학동창생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은 1970년대부터 엔지니어로서 다리를 놓고, 냉장고를 만들고, 섬유를 수출하면서 젊음을 불살랐다. 이제 중늙은이가 되어가는 그들은 어느 누구도 직장생활의 애환을 들먹거리지 않는다. 최고의 기술자로서 국가와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은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자랑스러운 엔지니어들이었으니까.

공항으로 배웅나온 학생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졸업하면 어떻게 진로를 정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민간기업에 일정기간 근무하면 병역이 면제되지만 군대에 가기로 했습니다. 학사장교로 복무하면서 제가 나아갈 길을 생각해 볼까 합니다.”그는 다름 아닌 30년 전의 내 모습 그대로였다. 그가 <미래의 과학자>자리를 겨냥하는 학자가 되건, 아니면 그가 가끔 꿈꾼다는 고고학자가 되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인생이라는 ‘모래’ 속에서 귀중한 삶의 편린인 ‘바늘’ 찾기에 이제 나섰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와 작별의 포옹을 했다. 그는 오랫동안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니다. 30년 전의 내가 바로 거기에 서 있었다. 나는 그 학생이 소망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 나처럼 힘들고 가파른 인생 여정을 가지 않게 되기를 기원했다. 인생은 어차피 자신이 책임져야 할 선택인 것을.

어느 가을날 포항공대에서 한국의 최고 젊은이들과 함께 보낸 하루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