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행진을 다녀와서 - 걷고 또 걸어 혼자에서 우리가 되다
국토대행진을 다녀와서 - 걷고 또 걸어 혼자에서 우리가 되다
  • 권원대 / 생명 3
  • 승인 2001.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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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군 중인 학생들
날씨가 뜨거웠다. 떠나기도 전에 이미 내 몸은 땀으로 젖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여행을 다니며 자주 듣는 얘기 중 하나인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복학생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사내놈이다. 비록 다른 군제대자와 같이 떳떳이 쉬지 않고 산을 여러 개 넘었다는 말은 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고생은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고생 맛이 그리워서 였을까 포스비에 올라온 모집 글을 읽고서 조금의 망설임 없이 난 신청했다. 어찌 보면 나의 이번 행사 참가 동기는 참으로 단순하다. 고생의 여행길이기 때문이다.

첫발은 가벼웠다. 눈 주위에 보이는 것이 익숙했고 비록 무더웠지만 출발은 언제나 상쾌한 법이니까 말이다.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어디까지 왔는지도 잘 몰랐다. 우리들의 행진은 동네를 돌며 북 치는 악단과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연주는 오래 가지 못했다. 첫 휴식부터 땅바닥에 철썩 주저 않는 이가 보이더니 언제부턴가 다음 휴식 장소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휴식 장소에 이르니 행렬의 머리와 꼬리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벌써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조는 아직도 수다를 열심히 떨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 조 구성원의 체력은 대단했다.

첫날의 해가 기울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걸었는데 아직도 포항이라는 농담 같은 불평을 들으며 우리는 마지막 고개를 내려오며 첫 숙소인 초등학교를 내려다 보았다. 운동장 곳곳에 작은 텐트가 세워지자 어서들 자고 싶었지만 자기 전에 밥도 먹고 씻어야 했다. 수돗가에 촛불을 피워놓고 등목을 하며 정말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고 밥을 먹으며 정말 배고팠다고 생각하고 오늘은 얼마나 걸었는지 생각하고 그리고 하루가 왜 그리 긴 건지 내일은 어디까지 갈건지걖? 이러한 많은 생각들 속에 잠이 들었다.

기상! 기상! 잠에서 깼다. 얼른 일어나야 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빨리 텐트를 치우고 밥을 먹고 7시에 행진을 시작했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가방만 쓰레기 봉지 묶는 냥 비옷으로 덮었다. 아침부터 해안가를 따라 걸어가는데 그 비옷을 입은 모습이 참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다. 행렬은 어제의 피로와 새로 생겨난 물집으로 이리저리 흩뜨려져 갔다.

둘째 날 밤은 해변이다. 모래사장 위에 텐트를 세웠는데 바로 옆에선 해병대 아저씨(?)들이 열심히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드디어 셋째 날 저녁이 되자 아직도 포항이라는 불평을 떨쳐버리고 경주시로 넘어갔다. 포항을 벗어나니 조금은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 차로 한시간 조금이면 도착할 걸 생각하니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바다를 곁에 끼고서 계속해서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했다. 한쪽 발을 절며 걸어 다니는 이도 눈에 띄게 많이 보였고 무릎과 다리에 압박붕대를 감은 사람도 보였다. 아마 저마다 발바닥에 물집과 물집을 터뜨리기 위해서 꽂은 실 가락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가지는 인내도 있을 것이다.

나는 행진이 끝나는 날까지 물집이 생기지 않아서 그 고통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4일째 되는 날 그들이 느끼는 아픔에 대해서 들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작은 학교 강당에서 잠을 청하기 전 저마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들이 왜 걷게 되었는지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학교에서 밥 먹고 자는 것보다 행진에 참가하는 것이 돈이 더 적게 들거란 생각이 참가 계기인 사람부터 얼떨결에 친구 따라 신청했는데 걸어서 간다는 걸 3일전에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이지 버스타면서 7박 8일 동안 부산 해운대까지 간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웃기다. 한편으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시간을 가지겠다고 하는 사람도 보였다. 난 나 자신이 단지 고생을 하러 온 것이 아님을 그 날이 되어서야 알았다. 여행의 피로란 걸 잘 느끼지 못한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을 이런 일에 시험하기는 너무 쉽지 않은가 하고 자문도 했다. 결국은 자신을 알아가는 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처음 만나는 동료와 같이 걷고 이야기하며 생각을 주고 받으며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알아가는 즐거웠다. 내가 건지지 못한 나 일부분을 누군가 다른 이가 끄집어 보여 줄 때나 그 이에게서 나 자신을 보게 될 때 난 흐뭇해진다.

우리는 그 날 이후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 동안 힘들게 오느라 다른 사람과 사귈 시간이 없었는데 그 시간은 우리를 좀 더 친밀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그 날 이후로 더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섯째 날 번개와 굵은 빗줄기를 헤치고 우리는 해운대에서 모자를 힘껏 하늘에 던져 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다’란 구호와 함께 저마다의 가슴에 훈장을 달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여행을 하는 사람’에 관한 한 글귀를 적으려 한다. ‘여행의 진짜 효능은 여행하면서 만나는 이런 저런 것들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익숙해져 있는 우리자아에서 탈피하는 데에서 우러나온다. 새로운 것들을 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모든 것을 다른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운다는 것 역시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 가장 진실한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고독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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