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자] ‘구별짓기’의 정당성? - M. Foucault, <광기의 역사>
[책을 읽자] ‘구별짓기’의 정당성? - M. Foucault, <광기의 역사>
  • 김민정 / 인문사회학부 교수
  • 승인 2007.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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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 시대에 발생한 광기와 이성 간 단절의 역사
포스테키안들은 인문사회 분야의 책을 얼마나 많이 읽고 있을까. 주변에 인문사회 분야를 전공하는 친구들도 만나기 힘들뿐더러 일반적으로 관심있는 분야도 아니어서 무슨 책을 읽을지 몰라 아예 관심 밖의 학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공계생들에게도 인문사회 분야의 지식은 필요하기에, 이번 호부터 이공계생들이 꼭 읽어봐야 할 인문사회 분야의 교양서적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미셀 푸코(1926~1984)의 저서 <광기의 역사>(1961)는 한마디로 고전주의 시대에 발생한 광기와 이성 간의 단절의 역사에 대한 고찰이라 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광기’란 기원과 본질에 의해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에 주어진 필요와 요구에 의해 규정지어지는 사회적인 것이다. 이를 푸코식의 시대 구분에 따라 요약해 보자.

먼저, 고전주의 이전, 르네상스 시대에 ‘광인’은 ‘정상인’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았으며 ‘광기’란 “인간을 비밀스런 지식과 숨겨진 지혜로 인도해주는 인간 자신의 동물성”으로 이해되었다. 이후 17세기 고전주의 시대에 들면서 광기에 대한 시각은 크게 달라진다. 이 무렵 서구의 산업화와 더불어 노동의 가치가 중시되면서 게으름은 사회적 범죄로, 빈곤은 도덕적 결함으로 간주되었다. 곧 게으름과 빈곤은 이 시대의 비이성과 비정상을 규정짓는 사회적 기준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광인뿐만 아니라 실업자, 범죄자, 건달, 환자, 반항아 등 당시의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이 ‘타자’들을 이성(정상)이 아닌 비이성(비정상)으로 분류해 사회로부터 배제시켜 폐쇄된 곳에 감금했다.

한편,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이르러 광기를 이성에 의해 교정해야 할 도덕적 결함으로 보는 새로운 인식이 등장하게 된다. 그 결과 광인을 사회로부터 단순히 배제시켜 감금하는 낡은 방식을 탈피하여, 치료하기 위한 근대적 ‘정신병원’에 이들을 수감하게 된다. 이제 사회는 광인의 죄를 더 이상 처벌하지 않았지만, 광인 스스로 처벌의 대상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함으로써 이성을 회복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 새로운 수용소는 광인을 야만적인 대우와 신체적인 징벌로부터 ‘해방’시키지만, 치료라는 ‘인간적인’ 명분을 내세워 사실은 그들에게 특정한 도덕적 가치들을 강요하고 그들 스스로 죄의식과 열등감을 내면화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광기’는 ‘이성적인 것’이 시대별로 정의되는 방식에 따라 달리 규정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성의 저편에 있는, 이성의 언어로 접근할 수 없는 비이성이 이성의 언어로써 정의된 셈이다. 바로 푸코는 ‘광기’라는 것이 늘 인간의 이성적 요소를 결여한 것으로, 다시 말해서 그 자체로서가 아닌, 단지 ‘이성의 타자’로서 정의되어 온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 사건, 사물들을 어떤 기준에 의해 구별짓는 것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질병, 준법자와 범법자, 정의와 불의, 진리와 거짓을 구분짓는 기준은 내 안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 속에서 ‘의외로’ 분명하다. 그 기준이 누구에 의해, 어떠한 근거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그것을 맹목적으로 신뢰할 뿐 아니라, 그것에 부합하지 않은 것을 ‘타자’라 규정하고 배제하며 때로는 비난하고 심지어 집단적인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우리’와 ‘타자’ 간의 그러한 구별짓기가 타자에 대한 근거 없는 오만이고 폭력적인 억압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면서도 이미 견고하게 내면화된 그러한 구별짓기는 한 시대 혹은 사회 전체의 논리가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우리가 삶 속에서 흔히 저지르는 구별짓기가 그렇게 객관적이지도 근본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우리 삶에 내재한 수많은 구별의 체계와 그 안에 은폐되어 있는 배제의 메커니즘 및 권력의 작용에 이제 스스로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만약 여러분 중에 그 의문이 자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고 느껴질 때 다음과 같은 푸코의 희미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길 바란다
.
“지식인의 역할은 다른 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 지식인의 역할은 다른 이들의 정치적 의지를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자기 자신의 영역에서 분석을 수행하면서, 자명해 보이는 원리들에 대해서 새롭게 질문하고, 행위와 사고의 방식 및 습성을 흔들어놓으며, 상투적인 믿음을 일소하고, 규칙과 제도들을 새롭게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