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촌맺기] 워킹 홀리데이 다녀온 표재연(신소재 04) 학우
[일촌맺기] 워킹 홀리데이 다녀온 표재연(신소재 04) 학우
  • 정현철 기자
  • 승인 2006.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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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공학과 04학번 표재연 학우는 지난해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호주로 8개월간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다. 이번 호에서는 표재연 학우를 만나 워킹 홀리데이를 가게 된 동기와 과정, 그리고 느낀 점을 들어보았다.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1년 반 동안의 대학생활을 회고해 보았다. 새로운 사람을 알고 사귀기를 좋아했던 터라, 신입생 때부터 자주 술을 마시고 날마다 동아리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 논 기억이 났다. 비록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친해지게 되어 뿌듯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내 삶에 뭔가 부족한 것을 느꼈고, 당시 나는 나중에 자식에게 들려줄 수 있는 뭔가 특별한 경험을 원했다.


“한 가지만 명심해라. 시간은 금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고된’ 아르바이트였다. 월마트와 편의점 심야 아르바이트를 구했는데, 일 욕심이 있는 지라 자주 초과근무를 해서 하루에 4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그것은 예상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오랜 시간동안 일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기보다는 상사들이 아랫사람을 부려먹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수당을 적게 주려는 것을 보는 것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반면 인생의 모범이 될 만한 분들도 많이 만나, 어떻게 해야 더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고 좋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었다.

한창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 즈음, 문득 외국에서 일정기간동안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워킹 홀리데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 마음을 굳게 먹으니 그때부터 넘어야 할 관문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필요한 경비도 스스로 마련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교수님과 부모님께 휴학 허락을 받아야 했다.
당시 지도교수님이 휴학을 절대 허용하지 않기로 유명한 분이셨기에, 앞으로 1년 동안의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 계획서를 들고 교수님 사무실에 찾아갔다. 처음 휴학 이야기를 꺼내자, 교수님께서 바로 “휴학, 왜?”라고 물으셔서 계획서를 보여드렸다. 교수님께서는 계획서를 살펴보신 후, “시간은 금이다. 자네가 하고 싶은 것 하나만 열심히 하여라”라는 말씀과 함께 휴학을 허락해주셨다.


호주에 첫 발을 딛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당시 한창 공부가 잘 안되던 시기여서 약간 도피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워킹 홀리데이를 결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환경에서 나 자신의 능력과 적응력을 키워보고 싶다는 도전심 때문이었다. 힘든 일을 찾아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고, 한두 달 간은 택배회사에서 하역하는 일을 해서 경비를 벌어 작년 10월 31일 출국하게 되었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도전심을 안고 호주로 떠났지만, 막상 공항에서 내려 가장 처음 느낀 것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것이었다. 공항만 해도 한국 사람이 너무 많았으며 나와 비슷한, 혹은 나보다 더 높은 차원의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때문에 ‘여기에 와서 모험을 하겠다’는 생각을 빨리 접게 되었다.

생활비로 50만원밖에 안 가져가서 빨리 일자리와 거처할 곳을 알아봐야 했다. 한국인들이 많아 그러한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나와 같은 목적으로 온 한국인들이 있는 곳에서 살며 곧 공사장 일을 다시 얻게 되었다. 시드니 시티 중심에 노래방을 만드는 공사였는데,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호주에서도 노가다 하는 분은 역시나 재밌다’란 생각이 들었다. 충청도 출신인 사장님께 여러 가지 인생 조언을 듣고, 같이 일을 하시는 분들과 서로를 격려해가며 돈독한 분위기에서 작업을 할 수 있었으니 호주에서 한 일 중 최고로 만족스러웠다. 공사판에서 얻은 수익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꽤 큰돈을 벌 수 있었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아는 분들과 자주 술을 마시며 여자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네 달 후 노래방이 완성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에 참여해 시드니 시티 중심에 가장 큰 노래방을 세웠으니 매우 뿌듯했고 사장님도 나에게 좋은 인상을 받으셨는지 그 뒤로 노래방을 찾아갈 때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너는 거기서 잘 살고 있겠지만,
너의 한국시간은 멈춰있다”
이렇게 일이 끝나자 문득 드는 생각이 ‘내가 이곳에서 뭐하고 있나’였다. 보통 워킹 홀리데이를 영어 실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데, 실상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신나게 놀다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즈음 평소 연락을 잘 안하시던 아버지께 전화 한 통이 왔다. “지금 나도, 너의 어머니도, 누나도 모두 잘 살고 있다. 너도 거기서 잘 하고 있겠지만, 너의 한국시간은 멈춰있다”는 아버지 말씀은 지난 4개월 동안의 호주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공항에 발을 딛었을 때는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에 실망했지만, 똑같은 사람들 중에서 최고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각오를 새롭게 다질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곳에서 내가 가장 특별해질 수 있는 길은 영어 능력을 키우는 것이었고, 때문에 그간 있던 곳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새로 얻은 일자리는 호텔에서 잡무를 보는 하우스키핑이었는데, 한국인 직원이 나밖에 없어서 영어를 써야 할 상황이 많았다. 그때부터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루 4~5시간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영문법을 공부하여 나름대로 문법적인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골드코스트로 이사,
외국인들과 살기 시작
그렇게 두 달을 보낸 후 골드코스트라는 해변도시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시드니에서와는 사뭇 달랐다. 골드코스트는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인 만큼, 누구라도 그곳의 아름다운 경관에 흠뻑 젖어들 수밖에 없는 천연의 자연 도시였다. 그곳에서의 하루는 아침 11시에 해변에 라디오를 들고 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해변에 누워 선탠을 즐기면서 올드팝을 듣다보면 마음까지 평안해졌다.

시드니에서의 삶과 한 가지 더 차이점은 그곳에서는 외국인들과만 살았다는 점이다. 서양인들과는 다른 인종이라는 이질감과 의사소통의 문제로 그렇게 깊이 어울려본 적이 없었는데, 골드코스트에서는 비슷한 또래의 독일인겳뎠뮌?캐나다인들과 살게 되니 자연스레 그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그때부터는 정확한 발음과 회화 연습에 집중하게 되었고, 어린이 만화에서부터 시작하여 차츰 드라마겮?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TV만 보아도 공부가 되었으니 나로서는 커다란 발전이었다.
서양인들과 어울려 놀면서 그들의 문화를 접하게 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들의 놀이 문화를 즐길 수 있었던 것,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우리와 여러 측면에서 다른 그들과 깊이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에서 그리 흔한 기회는 아닐 것이다.


8개월간의 외국 생활, 그리고 귀국
8개월간의 삶이 항상 순탄치만은 않았고, 때로는 의기소침해져 며칠 동안 불안과 우울함에 시달리며 허우적거리던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나름대로 성취한 것도 있어 떠날 때가 되니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에 돌아와 영어 시험을 쳐 보니 점수가 꽤 향상되었고, 갑자기 공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 점을 상기해보면 분명 그곳에서 얻어온 것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보다도 호주에서 접해본 외국인들의 생활, 외딴 곳에서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는 자부심은 나에겐 더 가치 있는 경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아가면서 가족·친구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껴본 것은 평생 동안 내 가슴속에 소중한 교훈으로 간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