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유출방지대책안’의 ‘전직제한’을 말한다
‘첨단기술유출방지대책안’의 ‘전직제한’을 말한다
  • 강진은 기자
  • 승인 2004.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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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현실 무시한 탁상공론?···직업자유 기본권 침해
‘기술유출’ 정의·범위 등 모호
산업화 과정에서 과학기술자들이 주로 수행해야 했던 일들은 외국 기술을 도입하고 소화하여 개량하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90년대를 거치면서 세계 1,2위를 다투게 되는 분야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는 곧 배우고 모방할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모방적 혁신에서 창조적 현신으로의 기술혁신패턴 변화, 그리고 재빠른 추격자에서 독보적인 리더로의 전환이 요구되었다. 즉, 기존의 ‘추격체제(catching-up regime)’를 탈피한 ‘탈추격체제(post catching-up regime)’로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탈추격체제’에서의 핵심은 단연 ‘첨단기술’이다. 우리나라 산업에서 선두를 다투는 기술개발 분야가 늘어가면서, 기술유출
에 따른 피해사례 또한 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등의 법률을 제정하여 대책을 마련해오고 있으며, 현재 산업자원부에서 ‘첨단기술유출방지대책법’ 입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9월 18일 열린 경제장관간담회에서 공개된 ‘첨단기술유출방지대책안’에 연구인력의 전직을 제한하는 등의 규제
강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공계 연구직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과학기술인연합(http://www.scieng,net)은 입법에 반대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온라인으로 서명운동을 펼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법안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들을 살펴보면, 우선 ‘기술유출’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범위가 모호하다. 법 적용 대
상이 되는 ‘핵심첨단기술’의 정의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기술유출과 관련하여 단순히 ‘부정한 방법 사용을 모두 처벌하겠
다’고 되어 있어 그 범위가 분명하지 않을 뿐더러 그 범위또한 매우 광범위한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해석에 따라서
는 작업을 위한 단순 반출도 위법일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예비·음모에 대한 처벌 조항 등은 단순 전직의 경우도 처벌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우려가 있어, 이공계 연구직 관련 종사
자들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 이번 정책의 추진 과정이 이공계의 연구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높아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특정 대기업의 권익 보호에 편향된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거세다. 첨단기술유출방지대책안에 따르면 ‘지난 1998년부터 올 8월까지 총 51건의 기술유출이 적발되었으며 이에 따른 피해액은 총 44조원 규모’라며 입법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에 관련 법률이 전무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구태여 충분한 검토 없이 성급하게 이 같은 법안을 제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

기술유출은 방지되어야 하고, 지적재산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기 이전에,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사항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범위를 세우는 동시에 각계 당사자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반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