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공학과 ‘아이디어 뱅크’ 김성완 동문
기계공학과 ‘아이디어 뱅크’ 김성완 동문
  • 기석 · 추광호 기자
  • 승인 2004.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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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 문제 의뢰받아 유·무형의 결과물 납품
창업한 회사 XYVec은 어떤 일을 하는지

XYVec은 Custom R&D (주문형 R&D) 회사로써, 연구·개발해야할 문제들을 고객들로부터 의뢰받아 유·무형의 결과물을 납품하는 일을 한다. 의뢰가 들어오면 해결가능성을 확인할 때까지 자체 검토 후 우리의 접근방법에 대하여 고객이 동의하면 계약이 이루어진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약속된 보수는 받지 않는 조건의 계약이지만 아직까지 보수를 받지 못한 적은 없다.
국내에는 아직 우리 회사처럼 주문형 R&D를 주력으로 표방하는 중소기업이 자리 잡지 못한 실정이다. 비슷한 일을 하는 업체들을 만나면 서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비슷한 업체가 없는지 늘 찾아보고 있지만 창업이후 아직까지는 만나지 못했다.

창업 이후 지금까지 겪었던 어려움이라면

창업 초반에 우리 회사는 운전자금이 너무 부족했다.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전에는 보수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는 우리의 선투자가 필요한데 연구비용이 없어서 충분히 해결해 낼 자신이 있는 일을 흘려보내야만 했던 일이 많았다. 연구실은커녕 사무실조차도 없었던 창업초기에 기계공학과 김무환 교수님께서 연구실 한편에 일할 공간을 마련해 주시고 따뜻한 격려로 큰 도움을 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큰 소리로 인사드린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은혜 잊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일거리가 없어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 우리 회사의 영업 전략은 ‘홍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입소문을 듣고 우리에게 연락해온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신뢰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작고 영세한 겉모양과 상관없이 우리의 실력을 믿고 함께 일을 할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는 포항지역의 틈새시장부터 공략하자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삼성, 포스코 등의 대기업 연구소들과 국책연구소, RIST 등 전국 각지의 여러 연구자들과 적지 않은 일을 하게 되어 놀랐다.

우리 학교에 진학할 생각은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나는 포항공대를 졸업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혜택이 과거보다 줄었고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며 불평을 하는 후배들을 보고 “개교당시 포항공대가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혜택이 많아서가 아니다. 네 실력이면 개교초기 선배들이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으며 입학할 수 있는 학교가 많을텐데 왜 그 학교에 가지 않았나? 우리학교가 자신감을 표현하는 모습이 나는 더 자랑스럽다”고 야단치듯 말했었다. 나는 그 당시 주변의 반대를 이겨내고 신념과 소신으로 우리 학교를 선택하신 선배님들과 교수님들을 존경한다.

학창 시절에 어떻게 공부하고 생활했는지

공부는 장거리 레이스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쏟아도 보람과 충족감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보람과 충족감 없이는 오랜 시간 버티지 못하고 지치기 쉬운 것 같다. 나는 ‘기타하나’ 활동과 학회활동을 통해 성취와 충족감을 얻었다. 그 외에도 목공을 통해 작은 책상이나 침대를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곤 했는데 이런 취미활동을 통해 공부로 지친 마음이 힘을 얻었다.

나는 전형적인 ‘사학파’였다. 기숙사에서는 토론을 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쉬고 싶으면 마음대로 쉴 수 있고 무엇보다도 기숙사는 조용하다(당시 나는 기숙사 2동에 살았었다). 난 새로운 것을 배우면 그 이론이 등장할 때의 환경을 생각했을 때 ‘그러한 상황이라면 나또한 이런 결론을 내리겠구나’라고 공감할 때까지 느끼고 생각하려 애썼다. 또 숙제문제를 풀 때는 문제에서 주어진 조건만을 보지 않고 그 상황이 현실에 적용되는 경우를 상상해가며 실제적인 고민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숙제가 두꺼워져서 보통 스태플러로는 묶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뒤부터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포항에서 학교를 다니며 살았다. 돈을 벌기 위해서 장사도 하고 이것저것 해보았는데 가장 괜찮았던 것은 지곡연못 근처에서 팝콘 장사를 했던 것이다. 당시 돈으로 한달에 40~50만원을 벌 수 있었는데 그 정도 수입이면 석 달을 일하면 한 달 정도는 쉴 수 있는 돈이었다. 어느 날 지곡연못에 놀러온 어느 아주머니로부터 “학생, 지난주에는 왜 안나왔어. 아이들과 놀러왔었는데 지곡회관이 쉬는 날이라 음료수 한 병 구할 곳도 없어서 그냥 돌아갔었어”라고 원망 섞어 하시는 말씀에 직업이란 것이 돈을 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사회에 봉사하는 통로로써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는 고등학교 윤리교과서의 말을 처음으로 체득했다. 이것은 지금 XYVec을 운영하면서도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다.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학창시절, 공부를 왜 하는지, 이 많은 공부가 과연 어디에 쓰일지 몰라 자신감을 잃고 마음이 흐트러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공부를 해야 할 목적이나 이유는 아직 분명히 모르겠지만 언젠가 찾아올 기회 앞에서 무능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 뒷걸음질치는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일단 그런 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 후부터 나는 나중 일은 하늘에 맡긴 채 대책 없는 자신감으로 맘 편히 지냈다.

공부하다가 마음이 지쳐 슬럼프에 빠져 힘들어하는 후배에겐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대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라고. 그리고 그걸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