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문화 탐방
교수문화 탐방
  • 나기원 기자
  • 승인 2004.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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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토론·휴식 즐길 수 있는 교수 전용공간 필요
우리 학교에는 천재 수학자로 불리던 존 내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감명깊게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프린스턴대학의 학생이었던 시절 존 내쉬는 교수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에 모여 있는 교수들이 한 교수에게 경의의 표시로 그 교수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만년필을 내려놓는 것을 목격한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모교의 노교수가 된 그는 자신이 노벨상 후보로 올랐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과 함께 차를 마시러 다시 그 장소로 간다. 존 내쉬를 본 다른 교수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자신의 만년필을 그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경의를 표한다.

미국 대학에서는 이처럼 교수들이 모여서 휴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있으며 이런 장소에서 교수 간의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좋은 예로 ‘브라운 백 미팅’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점심식사로 집에서 간편하게 샌드위치를 싸와서 먹는 일이 흔하다. 교수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점심시간에 각자 들고 온 샌드위치를 꺼내먹으면서 딱딱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토론을 하곤 하는데 이를 brown bag meeting (또는 gathering)이라고 한다. 이 brown bag이라는 명칭은 집에서 샌드위치를 가져올 때 재생지로 만든 갈색 종이봉투를 주로 쓴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이런 모임은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들끼리 모이기도 하고 마음에 맞는 지우와 함께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정보나 의논이 필요한 일이 생길 때에는 주제를 정하고 정해진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에서는 이런 토론이 잘 이루어지고 있을까?
우리 학교에서는 보통 같은 학과의 교수들이 같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 대부분의 교수들이 혼자 가볍게 점심을 해결하면서 시간을 아끼는 모습을 보아온 한 교수는 처음엔 이를 시간 낭비로 여겼다고 하지만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이런 모임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같은 학과의 교수들은 교직원식당에서 비교적 넓은 원탁 테이블에 함께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주로 학문에 관련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학과의 중요한 일에 대한 의논을 하여 의견을 모으기도 한다고 한다. 같은 학과의 교수들이 여러 명 되지 않을 경우에는 타 학과의 교수들과 합석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는 학문의 분야를 초월한 토론이 벌어지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이렇게 학문적인 토론이나 학과의 일에만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다.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 하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최근 북한 룡천역에서의 사고를 화제로 하기도 하며 공동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나 비즈니스적인 측면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잠깐의 티타임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짧은 시간 동안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각 학과에서는 교수 회의실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비공식적이고 형식 없는 토론을 통해 많은 일들이 이루어진다. 우선 가장 큰 장점은 의견을 전달하거나 모으는데 좋은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 덕분에 의견 개진이 자유롭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보다 부드럽게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 오랫동안 화학과의 주임교수를 맡았던 박수문 교수는 학과의 중요한 일들도 때로는 공식적인 토론에서보다도 비공식적인 모임에서 그 방향을 잡는 일도 많다면서 이러한 토론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학문적 성취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토론은 연구에 문제가 있을 때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직접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런 토론은 책이나 논문, 인터넷보다 정보를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 되며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 학교에서도 이렇게 많은 토론이 교수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교수 사이의 토론이 ‘교수 문화’를 만들고 이런 문화가 우리 대학을 이끌어가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