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실정에 맞는 연구인력 관리 시스템 찾아야
우리 실정에 맞는 연구인력 관리 시스템 찾아야
  • 강진은 기자
  • 승인 2004.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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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이 최근 펴낸 ‘2003학년도 연구업적’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219명의 교수가 1.259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이 중 964편의 논문이 미국 과학인용색인집 SCI(Scientific Citation Index)에 실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발표된 전체 논문의 77.1%로, 2001년 62.2%, 2002년 64.8%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하고만 있을 일은 아니다. 2003년도 세계 SCI 논문분석결과에 따르면 미국이 299.366편으로 압도적인 1위, 일본이 78,577편으로 2위, 중국이 35.593편으로 8위를 차지했고 우리나라는 17,785편으로 13위에 머물렀다.

대학별 상위 100위 권을 살펴보면 1위를 차지한 하버드대를 비롯한 52개가 미국 대학이 올랐고 일본·영국등 각 8개 등에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대가 3,062편으로 35위를 차지하여 유일하게 100위 권 내에 들었을 뿐, 연세대 152위, KAIST 178위 등에 이어 우리대학은 263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초라해보이는 우리나라, 우리대학의 순위에 연연하기 이전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느 통계를 막론하고 미국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다는 것, 다시 말해 미국이 ‘독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경순 교수(인문사회학부)는 “미국이 처음부터 세계를 휘어잡는 강대국이 아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과학·기술계의 시스템에 혁신적인 개혁을 감행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뛰어난 인재라면 어디의 누구인가를 막론하고 파격적인 대우를 하며 자기나라 사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듯 인력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미국은 소위 ‘잘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역사와 현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것을 역설했다.

그러나 제정호 교수(신소재공학과)는, 언론에서 꾸준히 부르짖고 있는 ‘고급 두뇌 해외유출’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제 교수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사람의 수나 유학을 갔다 돌아오는 사람의 수는 결코 문제의 핵심이 될 수 없다. 유학은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다. 미국의 입장에서 타국 학생들이 유학을 온다는 것은 거대한 달러벌이의 일환이며, 그들은 연구실 잡무를 담당해줄 훌륭한 소모품으로 활용된다. 유학을 떠나는 것을 곧 인력유출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우 우리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유학을 떠나며 그들 중 대부분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유학을 적극 장려하는 것은 그들이 ‘언젠가는 돌아와 중국을 발전시킬 인재들’이라 보기 때문이다. 즉 ‘인력유출’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잘 다듬어져 놓여있는 옥석조차 알아보지도, 관리하지도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90~91년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 중 미국 거주자 비중 통계자료를 보면, 아시아 국가들 중에 일본은 학위 취득자의 절대수가 적을 뿐더러 그들의 89%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상당히 특이한 성향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시작은 미국과 비슷했다. 국내외 유수의 인재들을 파격적인 대우로 들여놓고 대학을 세워 우수한 인력을 길러냈다. 그러나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와 결부된 학계는 더 이상의 유입도, 유출도 없이 경직된 관료적 풍토를 지켜나가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제 교수는 “일본의 대학문화는 우리나라의 의대 문화와 비슷하다. 상하관계가 너무나도 분명한 학계는 마치 고인 우물과도 같아서 썩은 물을 흘려버리지도, 새 물을 받아들이지도 못 한다”고 평했다.

일본이 과학·기술 선진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과학·기술계의 국제화에서 비롯된 경쟁력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외국인 Post-Doc 8만 양성’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의 경우는 또 다르다. 싱가포르는 이미 예전부터 선진형 시스템을 도입하여 과학·기술계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엄선된 프로젝트에는 연구비를 아끼지 않으며, 이공계 대학 교수들의 월급도 미국과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이다. MIT와 같은 미국 유수의 이공계 대학과 학술 교류 협정을 맺어 서로간에 교수를 초청하여 강연을 하는 등 교단 국제화에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어디까지나 작은 도시국가이며, 아시아에 위치하기는 하였으나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나 일본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계의 주무대를 미국에 내어준 유럽은 지금 어떨까. 모두가 알다시피 유럽대륙에는 크고 작은 수십 개의 국가가 모여 있다. 나라마다 문화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뭉쳐야 산다’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혀있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의 형성 역시 같은 맥락임은 물론이다. 때문에 유럽 국가들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합동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제 교수는 “경제적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될만한 소수의 뛰어난 인재를 파격적인 대우로 자국민을 만들기는 하되, 평소에는 굳은 울타리를 쳐두는 미국과는 사뭇 대조적인 분위기”라고 밝혔다.

여기서 우리나라가 본받을 만한 모델로 스위스와 핀란드를 제시해 본다. 스위스는 국토가 협소하고 천연자원이 빈곤하여 말 그대로 믿을 것이라고는 사람뿐인 곳이다. 이들의 모토는 ‘특성화된 것을 세계적인 수준으로’였고, 이는 당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핀란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눈여겨볼만 하다. 인구 500만의 핀란드는 지난 20년간 연구와 기술개발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투자를 꾸준히 늘려왔고, 세계적 기술협력 분야에서 핀란드의 역할은 나날이 커져 가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핀란드의 여성인력 활동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단 과학·기술계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남성과 여성의 활동 수준이 대등한 정도이다.

미국을 오가는 학생들의 머릿수에 연연하며 인력유출을 부르짖는 것은 이제 그만 두자. 보다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깊은 고찰과 고민을 통해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것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