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빛공장’ 가속기 사람들
[현장취재] ‘빛공장’ 가속기 사람들
  • 황희성 기자
  • 승인 2004.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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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빛은 저장링을 돌고 있었다’
▲ 선형가속기 LINAC
빔 라인 가동기간 중의 가속기 연구소의 하루는 아침 9시의 전자빔 입사(injection)와 함께 시작한다. 지난밤 9시에 입사한 전자의 에너지가 저장 링을 돌며 방사광을 생산하는 동안 떨어진 전자빔의 전류를 보충하는 것이다. 선형 가속기 리낙(LINAC)을 통해 최초 80keV의 에너지를 가진 전자빔이 2.5GeV로 가속되어 저장 링으로 입사되면, 비로소 그날의 ‘신선한’ 방사광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12시간마다의 입사는 실험의 효율을 높여 24시간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대부분의 이용자는 국내외의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온 과학자들 이에요. 3~4개월쯤 전부터 빔라인을 이용해서 실험할 계획서를 제출하지요. 그리곤 짧으면 이틀, 길어봐야 5일 정도의 시간을 배정받으니까, 24시간 모두 사용하는 꽉찬 실험들을 계획해서들 와요.”

가속기가 완공되기 전인 지난 1993년에 입소한 이래로 10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학교 대학원 박사 1년차이기도 한 김기정씨는 자신의 연구과제 이외에도 빔라인(2B1 광전자 분광학 빔라인) 사용자들에게 기본적인 실험 방법 등에 대해 도와주는 등 바쁜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김기정씨 개인의 연구과제를 위해서는 별도로 구성원을 위한 빔타임이 지급된다고 한다.

“사실 5, 6년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길 찾진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가속기의 빔라인을 이용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알려지기 시작하고, 이곳의 빔라인들을 이용한 연구들이 좋은 성과들을 거두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 한 거죠.”

연구 시설도 1994년 완공되어 지금까지의 9년여 동안 크게 늘어났다. 완공 당시 자외선 1기, X선 1기에 불과했던 빔라인이 현재는 운영중인 빔라인만 19기가 설치되어 있고, 건설중인 빔라인은 9기에 달한다. 광주과학기술원이나 포스코, 연세대학교, KIST 등 외부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빔라인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미 국가적인 연구시설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방사광을 이용하여 어떤 연구를 하는 것일까. 가속기 연구소에서 방사광은 실험 대상이자 실험 도구이다.

“보통은 자외선이나 X선의 회절, 산란 등을 이용한 분광학(spectroscopy)을 주로 하게 되죠. 이걸 통해서 여러 가지 시료들의 구조 및 표면의 화학적 성분이나 전자구조 등을 분석해요. 요즘 새로 건설되는 빔라인들은 나노구조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최근에는 물리, 화학 재료나 기계분야 뿐만 아니라 생명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고분자나 단백질 결정 등의 분광에 대한 워크샵을 이곳에서 개최하는 등 이용자의 저변확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가속기 연구소 안에서는 발걸음을 옮기는 곳 마다 모니터에서 실시간으로 어떤 그래프를 볼 수 있었다.

“그건 저장링의 전자의 에너지 상황이에요. 연구소 내의 모든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지는 사항이죠. 아침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살피는 것도 저 모니터에요. 출근하자마자 확인해 보고 그래프에 이가 빠져 있으면 ‘아, 어제는 상황이 안 좋아서 밤샘하던 사람들이 힘들었겠구나’ 하고, 평탄하게 나오면 ‘아, 어제는 괜찮았구나’하는 거죠. 이가 빠져있다는 건 입사를 새로 해야 했다는 뜻 이거든요. 빔타임에는 저 그래프 만큼 자주 보게 되는 것도 없어요.”

방사광 가속기는 1년 내내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1년간 정해진 계획(operation schedule)에 따라 사용자 빔타임과 가속기 유지 운영을 위한 시설 점검, machine study등의 일정으로 이루어진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12월 24일에는 2003년의 마지막 빔타임이 오전 12시까지 있었다.

“shutdown하는 날엔 보통 마지막 까지 실험을 위해 빔라인에 남은 연구자들과 빔라인 담당자들, 그리고 가속기 운영에 수고한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모여서 피자 파티를 해요.”

Shutdown후 1월 중순까지는 가속기의 전반적인 점검과 조정, 관리가 이루어지게 된다. 방사광 가속기가 휴식기인것 처럼 김기정씨 에게도 잠시간의 휴가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가속기가 사용자 빔타임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의 연구 과제와 더불어 외부이용자관리 라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하게 될 것이다. 두 가지 일을 같이 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김기정씨는 이렇게 답하며 웃었다.

“물론 몸은 힘들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이용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매일매일이 흥미진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