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랩생활 24시
대학원생의 랩생활 24시
  • 류정은 기자
  • 승인 2003.09.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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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3역의 연구중심대학 떠받치는 ‘만능맨’

아침 8시, 대학원생 1년차인 김 모씨는 오늘도 침대에서 자명종 소리와 사투를 벌인다. 어제 새벽까지 실험을 하다가 기숙사로 내려왔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9시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급히 나갈 준비를 하고는 아침 식사를 챙길 겨를도 없이 랩으로 향한다.

1학기에 보통 1-2개의 수업을 듣는 김씨는 랩에서 개별 연구와 공동 프로젝트, 자기 공부를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자기 공부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에 들어서는 연구 외의 잡일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랩의 홈페이지 관리도 해야 하고, 공용 물품 관리도 김씨의 몫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졸업 후, 취업을 생각하고 있지만 따로 취업 준비할 짬이 나질 않는다. 랩에서의 실험에 희열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때로 늦은 시간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보며 한숨을 짓기도 한다.

랩에 따라 대학원생들의 생활은 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9시 출근에 11시 이후 퇴근에, 주말에도 랩에 나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1년 중 여름과 겨울 각각 5일 정도의 휴가가 있을 뿐,휴일이라고 순순히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실상 석사는 월 59만원, 박사는 월 70만원을 받으며 빠듯하게 생활한다. 등록금을 내고 나면 꼬박꼬박 학생식당을 찾아야 기본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 지곡회관 서점 옆 과외 전단지들 사이에 간간히‘대학원 석사 1년차’ 라는 문구를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알고보면 과외를 하는 대학원생들 대부분은 혹시나 교수에게 들킬까 쉬쉬하며 과외를 하고 있고 공식적으로 과외를 금지하는 랩도 있다. 그러나 생활이 빠듯하겠다는 말에 “오죽하면 대학원생들의 엥겔지수는 100이라는 말이 나왔겠어요.” 라고 답하는 대학원생들의 얼굴에 놀랍게도 그다지 불만의 기색이 없다. 오히려 국내, 아니 외국 대학의 환경을 생각해보더라도 실험 환경은 최고, 복지 환경은 좋은 편인 이 정도 환경은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화학과 석사 2년차 박 모씨는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닌다면 수도세에 전기세, 방세, 인터넷요금, 교통비 등이 더 들겁니다. 여기는 기숙사도 제공하고 월급도 주니 좋은 편이죠.”라고 이야기를 꺼낸다. 언론에서 떠들썩하던 교수의 학생 성폭행, 모욕 등의 일도 없고 교수들은 학생들을 배려하는 등 신사‘적’이다. 또한 화학과 같은 경우 실험실에 후드가 거의 개인별 1대로 갖추어져 있고, 학교에서 전 과정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실험 기기를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 실험을 위탁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학교 옆, RIST와의 연계활동이 활발한 것도 큰 장점 중 하나다.

한편, 석사과정들은 비품 관리, 랩 청소, 영수증ㆍ문서 정리 등의 단순 노동 잡일을, 심지어는 박사과정들도 논문 심사 같은 교수의 일을 대신 맡아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 이들의 순수 연구나 공부시간은 침해받고 있다. 외국의 대학원에는 따로 랩의 잡일을 처리해주는 직원이나 청소원이 있어서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부러움을 표시하는 대학원생도 있었다. 반면 기계과 박사과정에 있는 이 모씨는 잡일까지 하다보니 외국의 대학원생들에 비해 전 과정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경쟁에서 더 강하다는 장점도 있어 나쁘게 생각하지만은 않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원생들이 공통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것은 대학원 수업. 외국의 경우는 대학원생이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수업으로 여기지만, 우리 경우는 잡일이나 연구에 수업이 밀리는 현실이고 실제로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 말한다. 기계과 박사과정 1년차 정 모씨는 “수업이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을 빠른 시간에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며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토대가 된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따른 교수의 출장으로 휴강이 되는 경우도 잦고, 강의 준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심지어는 대학원 수업이 학부 때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 학교는 상대적으로 연구 외적인 지원환경 구축이 잘되어 있어 국내 대학에 하나의 우수모델을 제시했다. 그러나 연구를 지탱하는 강의 체계 등의 교육 시스템 상 미비점들이나 대학원생 교육에 대한 인식 등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 대학에서 얼마나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느냐는 대학의 질을 결정하며, 그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대학원생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 시간을 즐길 여유 없이 연구에 자신을 투자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그들의 욕구에 충족될만한 교육 환경과 실험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을 때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의 꿈은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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