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현주소
학문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현주소
  • 구정인 기자
  • 승인 2004.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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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수준 향상위해서는 정책적·경제적 지원 병행돼야
가끔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토종박사’라는 말을 접하게된다.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들이 어느 대학, 특히 외국대학이나 유명대학의 교수가 되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연구원들이나 대학원생들은 어이없어 하거나 불쾌해하는 경우도 많다. 한 연구원은 “그런 이유로 주목을 받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내게 그런 이유로 인터뷰를 해왔다면 불쾌해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나라의 학문수준은 그렇게 떨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예전에는 미국이랑 많이 차이가 났지만, 요즘에는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학교 정도의 교육수준이면 졸업하고도 외국에 가서 상위단계의 교육을 받아도 내용에 있어서 따라가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다”라며 큰 차이가 없음을 시사했다.

또 “논문에 있어서는 이제는 어디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학교나 카이스트 같은 경우 외국의 유명저널에 논문이 실려야만 학위를 받을 수 있기에 질적인 면에 있어서도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다. 연구의 경우에도 최신경향을 앞서서 주도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좋은 결과들을 내는 연구가 많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 같은 곳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교수는 “외국에서 학위를 따는 것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지만 학생들이 국내에서 학위를 따고 박사 후 연구원을 가는 것에는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지도학생들의 경우를 보거나 몇몇 대학원생들을 보면 미국을 갔다 오면 자신감을 갖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또 미국에 있으면 그래도 학문의 첨단기술 같은 것들을 접하기가 쉽고 유명한 사람들을 직접 접할 수 있어 그들에게 학문에 대한 조언이나 도움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리고 아직 국제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한 분야도 많이 있어서 나가는 사람도 있다”며 외국 유학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국내에서 연구를 계속한다면 아무래도 한국실정에 맞는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나 여러 다른 연구소와 연계가 쉽다. 기업들 같은 경우에는 일본의 기술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연구하고 공부한 사람들보다 국내에서 연구한 사람들이 잘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며 국내에서 연구하는 것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음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미국 박사학위 취득을 하고도 미국에 거주하는 비율이 낮은 국가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인력유출에 있어서는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교수는 “반도체 등 일부 분야에서는 인력유출이 있긴 하다. 그러나 정확한 통계가 없기 때문에 뭐라고 언급하기에는 힘들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박사과정에 있는 한 학생은 “인력관리에 있어서 허술한 점이 많고 연구원들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환경에 실망하고 빠져나가는 사람이 많다”라며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수준이 더 향상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

한 대학원생은 “이공계 살리기라는 명목 하에 학부생에게만 일부 장학금을 주는 선심성 정책으로는 연구수준이나 학문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학부생뿐만 아니라 대학원생들이나 연구원들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 금전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직접적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다른 의견으로는 “자본적인 문제가 너무 크다. 미국이 연구를 잘하고 학계에 있어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들 중 하나는 거대한 자본의 힘이다. 사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연구가 있어도 자본이 부족해서 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또한 경제적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학문적 편향성을 보이기 힘들다”며 연구능력과 학문의 발전은 경제적 지원이 수반되어야 함을 드러냈다.

반드시 미국에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만이 우수한 결과를 얻어내는 것은 아니다. 예전의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이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간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수준도 많이 향상된 요즘에는 굳이 유학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의문을 표한다.

국내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이나 명문대의 교수가 되었다고 해서 주목받는 기사가 평범하고 이상해서 사라지는 즈음, 우리나라 학문의 위치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