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오름돌] 정형화된 사회
[78오름돌] 정형화된 사회
  • 정현철 / 문화부장
  • 승인 2007.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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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학을 졸업하여 일찍이 사법시험에 통과해 법관이 되고, 초등학교 혹은 중고등학교 교사와 결혼하여 강남의 XX 아파트에서 한 평생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사는 것”
한 남학생이 일찍부터 세운 인생의 목적과 계획이다. 아니, 대다수의 학생이 이러한 생각을 가졌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정형화된 기준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이를 강요받고 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정말로 학생의 피를 말린다. 요즈음은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져, 많은 학생들이 어린 나이부터 꽤나 고생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정작 “왜 대학에 들어가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지나치게 되었다. 물론 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답. 그러나 그것은 벗겨보면 결국 현재 사회에서 존중받고 있는 돈과 권력 등의 가치와만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소위 ‘엘리트’라고 칭할 수 있는 학생들, 그들의 장래희망은 이상하게도 법관·의사와 같이 특정 몇몇 직업에만 한정되어 있다. 앞에서 말했듯 우리 사회가 정형화돼버린 가치이자 목적이다.

이러한 느낌을 비단 교육에서만 받은 것은 아니다. 직업 이외에도 한 가지 더 언급하고픈 분야가 있다면 바로 취미와 관련된 것이다. 젊은 층에서 노래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특히 남자들 사이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몇몇 온라인 게임을 모른다면 좀 심하게 말해 따돌림을 당할 것만 같은 현실이다. 여기에서도 역시 우리 사회는 너무나 정형화되어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강요하며, 이에 따라 ‘취미’란 이제 능력을 나타내는 한 지표가 된 듯하다. 좀 특별한 취미를 가졌다면 그는 개성 있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는 있으나, 잘못하면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못할 수가 있다. 취미는 어떤 것을 좋아해서 하는 활동이 아니라, 좋아해야 하니까 가져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옛날에는 귀한 신분을 타고 나야 했지만, 이제는 개인이 능력을 갖추어야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이는 당연한 현상이며, 필자도 이 서글픈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제는 너무 겉만 조명되다보니 정작 목적은 뒤로 숨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능력이라는 것이 몇몇 특정한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사람들은 이를 강요받게 되었다.
매체의 발달은 이러한 능력을 만들어내며, 획일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언젠가 한인 유학생이 어린 나이에 하버드대에 들어가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물론 지역 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학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모델’들이 매체를 통해 여러 사람의 눈앞에 나갔을 때 과연 어떤 파장이 일어날 것이냐는 것이다. 이것을 접한 열성 학부모, 이제 그 자식의 앞날은 불쌍하기만 하다.

이러한 획일화는 어떤 문제점을 발생시킬까? 앞에서도 언급했듯 정형화된 활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소외될 수 있으며, 그저 사회가 제시한 기준을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고 자신만의 결단을 내리는 데 소극적으로 될 수 있다.
필자는 사회에서 좀 더 따뜻한 무언가를 느끼기를 바란다. 장래 직업을 결정할 때 돈겚퓐째?같은 단어들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기를 바라며,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어떤 레퍼토리를 따라 놀아야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자신의 확고한 목적이 없이 정형화된 틀을 따라간다면 사람은 결국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체에 의해 움직이는 부속품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왜 해야 하는가?”라는 목적이 중시된다면, 지금보다 좀 더 다원화된 사회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