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포항, 포항공대, 포항공대인
[78계단] 포항, 포항공대, 포항공대인
  • 황희성 기자
  • 승인 1970.01.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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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항사람이다.

태어나서 초등학교 졸업 즈음까지의 13년간의 생활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포항에 위치한 포항공대의 학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내가 포항의 포항공대에 사는지, 전재산이 29만원이라는 누구가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설악산의 백담사에 살고 있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포항공대 학생이 그만큼 포항이라는 도시와 거리를 두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항은 지금 매우 뜨거운 논쟁 속에 휩싸여 있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의 유치문제가 시의회에서 가결되었지만, 이를 반대하는 세력과 찬성하는 세력간의 논쟁은 점점 가열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는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현안 중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인 이 문제에 대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한가지 문제에 대해 여러 시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항공대신문사에서도 오래 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취재를 계속해오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신분을 밝히면 찬반 어느 입장의 사람과 이야기를 해도 좋은 반응을 얻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유치 찬성 측의 경우는 “포항공대라면 유치에 찬성하는 입장인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치느냐”며 화를 내고, 반대 측의 경우는 “(학교를) 졸업하면 포항을 떠날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화를 낸다. 취재하는 입장에선 매우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이번 방폐장 유치 논쟁에 대해 우리 대학이 ‘구성원들의 의견을 통일하여 공식적인 입장’을 제시한 적은 없다. 심지어 포항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논쟁이 학내에서도 이루어진 일이 있는가 하면 이 역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것은 이 논쟁에서 포항공대의 입장이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대학에서는 이번 논쟁에서 오해를 살 만한 일이 많이 발생했다. 포항의 모 지역단체가 우리대학에서 자리를 빌려 유치를 지지하는 회의를 가졌었고, 이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우리대학에 항의해 오기도 했다. 또 우리대학 총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대구·경북 총학장협의회에서는 지난달 유치 찬성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훌륭한 유치 지지세력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어떤지는 접어놓고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대학이 실질적인 움직임은 아무것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 싫어서일까? 이미 오해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은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약간 비틀어서 보면 이러한 오해들은 우리대학이 포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항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추측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사실이다. 대학의 사명 중 하나는 지역사회의 문화를 창출하고 봉사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학내 구성원들에게 이 역할이 잘 이뤄지고 있느냐고 질문해보면 긍정적인 답변을 얻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이번 사태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사명’이란 말에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단조로운 대학생활의 탈출구로 생각해도 좋고, 이곳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어떤 종류의 연대의식을 느껴도 좋다. 분명한 것은 어떤 형식의 참여든 간에 불만 섞인 한마디를 던지기만 하는 것 보다는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식은 실천을 전제로 존재한다. 당신의 지식이 당신 안에서만 존재한다면 그 지식은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실천의 동기가 거창한 인류 발전이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과 학구열의 충족이라도 좋다. 자, 이제 지곡골을 나서 포항 안으로 뛰어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