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이 때를 기다려왔다
[78계단] 이 때를 기다려왔다
  • 나기원 기자
  • 승인 2004.11.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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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서울의 대학들에서 학교를 뒤덮은 대자보와 현수막에 놀란 일이 있었다. 낡은 벽돌 건물의 벽에 붙여진 대자보들, 색색깔의 현수막 위에 글씨들은 대학이란 이런 곳이라는 이미지를 머리 속에 남겨두었다. 이들의 중요한 부분은 언제나 선거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선거에 출마한 입후보자들이 이곳저곳에 붙여놓은 대자보 위의 빽빽한 공약과 힘에 찬 구호는 나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하였고 곳곳에서 입후보자의 이름을 외치는 고함이나 전단지를 쥐어주던 손은 지금 이 학교가 선거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였다.

정작 내가 온 포항공대에서는 그런 풍경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작년 총학생회장 선거 때에는 공약을 홍보하는 대자보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학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후보자가 누구인지도 잘 몰랐다. 그나마 입후보자 측에서 받은 전단지에서도 ‘선거’라는 이름에 걸맞은, 기대했던 것만큼의 열정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독출마에 이은 찬반투표라는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다른 대학에서 보던 것과 같은 입후보자의 열정과 학생들의 관심을 찾아보기는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찬반투표가 어째서 나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사실 경선이란 반드시 선거의 패자를 동반하기 마련이고 패자에게는 선거에 쏟은 노력과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적지 않은 학업량과 이공계 대학이라는 특성 하에서 어쩌면 입후보자가 한 명이라도 나와주는 것이 고맙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명뿐인 입후보자와 그에 따른 찬반투표는 많은 문제가 있다. 우선 선거의 유권자이자 총학생회의 주체인 학우들의 선택권을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방향과 내용의 공약을 통해 학생들을 설득하는 과정 후 학생들의 투표로 학교가 나아갈 방향을 보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쪽으로 결정하는 것이 총학생회 선거의 목적이라고 할 때 우리 학우들에게는 그러한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의 학우들이 총학생회의 활동에 대해 무관심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학우들이 직접 비교하고 선택한 입후보자가 총학생회장이 된다면 총학의 활동에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일 것이다. 또한 경선을 통해 총학생회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또한 단독출마를 통해 선출된 총학생회장이 학생 전체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가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입후보자가 총학생회장을 맡을 자격이 있는가를 심사하는 것이 찬반투표라고 하지만 그런 최소한의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로 의례적인 찬성표를 던지는 학우들이 많았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이런 과정을 거쳐 당선된 총학생회장과 당선 후 구성되는 총학생회에 학교 구성원의 생각을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여겨진다.

2000년 이후 4년만에 총학생회장 경선이 이루어진다. 이 경선은 학생을 대표하는 기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하던 총학
생회에게는 쇄신의 기회가, 학우들에게는 총학생회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총학생회의 활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입후보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인맥보다는 공약으로 승부하는 선거, 세세한 사항보다는 학우들을 이끌어나갈 방향과 머릿속에 그려놓은 큰 그림으로 승부하는 선거가 보고 싶다. 선거가 끝난 후에는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서로를 통해 좀 더 나은 방향을 찾았으면 한다. 유권자들의 한 사람으로서 학우들에게 부탁한다. 이 선거에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한다. 그리고 선택한 후 투표를 하자. 자신의 손으로 학교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