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작지만 끈끈한 정이 있는 학교’?
[78계단] ‘작지만 끈끈한 정이 있는 학교’?
  • 황희성 기자
  • 승인 2004.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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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기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생활하다 보면 이런저런 과 행사나 모임에는 양해를 구하고 참여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개중에
는 진짜로 기자 일이 바빠서 피치 못하게 참여하지 않는 행사도 있지만 ‘피곤하다’, 혹은 ‘숙제가 너무 많다’, ‘귀찮다’
등의 대기 쉬운 핑계들로 일부러 빠지는 행사들도 있다. 게다가 무학과 출신이기에 과 행사만 나가면 어색하다든지, 왠지 소외당하는 느낌이라든지(아무도 소외시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핑계를 대자면 한도 끝도 없이 많이 나오는 것이 핑계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 핑계를 떠올리는 이유를 정리해 보면 거의 한가지로 귀결된다. 서먹서먹한 사람들과 얼굴 마주치기 싫어서, 혹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기 귀찮아서.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포스테키안 중 일부는 새로운 인연의 끈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고 자위하며 한 마리 늑대의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작지만 경쟁력 있는 학교’의 이미지를 세간에 심어왔다. 그리고 그러한 홍보 전략 대로,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글쓰기 수업 과제 글을 보면 ‘작기 때문에 단점도 있지만 오히려 서로간에 더 끈끈하고 정이 넘치는 학교이다’라
는 문구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떠한가. 학생과 학생들 사이만 보더라도 행사 준비하는 사람은 사람이 없다고 화내고,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행사가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투덜거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학생과 직원 간의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일부 학생들은 직원을 말이 안 통하는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또 일부 직원들은 학생을 동등한 구성원이 아니라 훈계하고 질타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수와 학생간에도 ‘학부생 지도교수’라는 타 학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멋진 제도가 있지만 이것이 학생과 교수의 관계를 좋게 만들어주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1년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만나는 지도교수와 지도학생의 관계는 완전한 타인사이의 관계와 무엇이 다른가.

대학원생의 경우도 비슷하다. 몇몇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는 심하게 말하자면 ‘주인과 종’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어색한 관계
이다.

그렇다면 ‘작기 때문에 더욱 끈끈하고 정이 넘치는 학교’는 완전히 허상인가. 물론 어떤 집단 하나가 완전히 한 덩어리로 뭉
쳐서 하나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구성원의 화합은 큰 집단 보다는 작은 집단에서 이뤄내기 쉽고, 그 노력 역시 작은 집단쪽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 만큼은 사실일 것이다.

점점 메말라가는 인간관계는 개인의 발전에는 관계없을지 몰라도 어떤 집단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줄어가는 의사소통은 불신을 부르고, 불신은 불화를 잉태하며 불화는 결국 파국을 낳는다.

기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취재를 통해 돌아본 학교의 분위기는 학생은 끼리끼리 갈라지고, 직원은 이리저리 치이고, 교수는 서로 불신하고 불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우리가 한 배를 탄 동반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자발적이고 협력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