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사막에서도 우물찾는 노력 포기할텐가
[78계단]사막에서도 우물찾는 노력 포기할텐가
  • 강진은 기자
  • 승인 2004.09.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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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밤, 학생회관 1층 생각나눔터에 각기 다른 여섯 명의 남녀가 모였다. 포항공대·포항공대인의 성을 이야기하는, 장장 두 시간 반에 걸친 대담(관련기사 6·7면)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성공, 충분히 즐겁고 유쾌하며 알찬 이야기판이었다.

사실, 대담을 준비하는 내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개방적인 성문화를 가진 것도, 성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닌 이곳 포항공대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며, 독자들로부터 얼마만큼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까? 사실 성에 대한 대담을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년 4월 본지 192호 문화면에서, 교내 성문화를 논하는 대담을 마련했었다. 허나 일상생활에서 보다 심도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고, 이러한 선배들의 경험은 내게 걱정과 부담을 더해 주었다.

그러나, 걱정은 이내 감동으로 바뀌었다. 준비해간 다양한 레퍼토리의 시나리오들이 한 번 머리를 들이밀어볼 기회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우리 학교에서 이렇게 머리 맞대고 고민하며 토론할 수 있으리라고는 차마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되돌아보자. PosB와 POSIS, 교내 구성원들의 대다수가 주시하는 동시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우리 학교의 대표적 BBS들이다. 교직원들의 사용 및 활동이 더 활발한 POSIS는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요즘 PosB가 돌아가는 모습은 가히 엽기적이랄 만하다. PosB의 하위 게시판들은 주제별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각 게시판의 성격에 맞는 글들이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허나 언제부터인가, 각종 보드의 ‘스크래치보드화’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원문의 제목을 버젓이 달고 난무하는 답글들의 절반 이상은 보나마나, 앞 글에 사용된 단어에 꼬투리를 잡은 것이거나 글쓴이의 태도를 문제 삼는 것 내지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의 안부 정도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근본적으로 ‘토론’이 될 수가 없는 상황인 것도 모자라서, 최근에는 욕설이 난무하기까지 했다.

교내 학생과 교직원만이 접근할 수 있는 POSIS와는 달리, PosB의 모든 글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부시맨에게도 읽을 권리가 주어진다. ‘나라의 내일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 뜻을 모으는 겨레의 정예들이, 과학과 기술의 요람 포항공대’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하는 이야기가 고작 이 정도인가? 포항공대에 대한 무한한 동경으로 반짝이던 나의 여고시절 눈망울에게 지금의 PosB를 볼 기회가 단 한 번만 주어졌더라면, 그 무한했던 동경은 무한한 실망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비단 PosB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사회에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얼마만큼의 진지한 고민과 의견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일까? 한 부의 신문, 한 권의 책, 한 시간의 뉴스가 아쉽고, 그들로부터 비롯된 지성인다운 고찰과 토론은 더더욱 아쉽다. 철학과 사상, 사회를 논하는 동아리 하나 변변찮은 것이 없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며, 그보다는 학내 사안에 제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소극성이 더더욱 부끄럽다.

사막에 선 우리는, 대화에 목마르다. 목마른 자 오아시스를 찾으려 함이 당연하나, 오아시스를 찾는 모험에는 신기루의 유혹이 너무나도 강하다. 신기루는 신기루일 뿐, 신기루를 움키려 들 때마다 양 손 가득 남는 것은 메마른 모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바엔 차라리 우리 한 데 모여, 우물을 파는 것은 어떨까. 100미터를 파고들어야 물이 나올지언정, 100인이 모이면 1미터씩, 200인이 모이면 50센티미터씩이다. 지성의 우물, 결코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