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이공계 장학금, 과연 내가 받아도 될까?
[78계단] 이공계 장학금, 과연 내가 받아도 될까?
  • 이현준 기자
  • 승인 200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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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필자는 이공계에 대해서 광범위한 취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공업 고등학교, 이공계 관련 전문대학의 연재를 끝내고 아이템으로 잡은 것이 이공계 장학금이었다. 이 기획에는 다른 기획보다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기울여 취재를 했지만 결론을 내리고 방향을 잡을 만큼의 객관적이고 충분한 자료를 얻지 못해 아쉽게도 기사로 표현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이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여러 가지 놀라운 사실이나 받은 느낌들은 그냥 묻어버리기에는 아쉬웠다.

이공계 장학금은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들을 광범위하게 가져다 주었다. 2003학년도의 예를 들면 지방의 A대의 경우에는 자연과학대학과 공과대학의 신입생들은 장학금 수혜를 거의 받지 못한 반면 사범대학의 과학·수학관련교육학과의 경우 많은 신입생들이 장학금 수혜를 받아서 각 단과대학 학생들 간에 논란이 생긴 적이 있었다.

또 B교대의 경우에는 같은 교육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세부전공 선택에 의해서 장학금 수혜여부가 결정되게 되었다. 교육대학의 경우에는 그전까지는 세부전공 선택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선배들이 관습적으로 그렇게 알려주었고, 후배들은 대부분 그 말을 그대로 좇아서 별 생각없이 세부전공을 선택하였다.

이렇게 세부전공을 선택한 학생들이 나중에 이공계 장학금에 대해서 알게 되자 이공계 장학금에 대한 찬반양론이 이 학교의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고, 학보에 기사로 게재되기도 하였다.
이때 나온 의견 중에 몇 가지를 살펴보면, ‘앞으로 세부전공 선택에도 경쟁률이 생기게 됐다.’라는 의견, ‘공대에 줄 장학금이 남아돌아서 우리한테도 주는 건데 감사히 받아서 재밌게 쓰기나 하자.’라는 의견 등 조금은 비꼬는 듯한 의견이 대부분이어서 학생들의 이공계 장학금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또 C대학의 경우 이공계 장학금 수혜 내용을 실적처럼 학교 홍보에 이용하기도 해 과연 이공계 장학금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조차 회의를 품게 되었다.

정부의 ‘우수한 이공계 인력 양성’이라는 목표는 그 추진사항들로 보건데 ‘우수한 연구인력 양성을 통한 과학기술 경쟁력의 제고’가 그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에 부합하는 적합한 지원대상은 대학원생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학부에서는 좀 더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학문을 배우는 요즘의 추세에 있어서 이공계 인력이라고 부를만한 학생들은 대학원생들일 것이다. 물론 대학원생들에 초점을 맞춘 여러 가지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대부분 유학에 초점이 맞춰진 단기적이고 부분적인 지원책들이어서 그 한계점이 있다.

또 언론에서 그렇게 조명을 받지 못한 사실이지만 대학원생들에게도 이공계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다. 하지만 학부생에 비해서 전체 지원금액이 미비한 수준이고, 우리학교의 경우에는 그나마 BK21과의 장학금 이중수혜가 안돼서 실질적인 도움은 거의 없다. 선정기준도 딱히 없고 각 대학원의 학생 숫자에 비례해서 일괄지급하기 때문에 지급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학기의 이공계 장학금에 대해서 취재하면서 ‘X-File’에 접근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지만 쉬쉬 덮어놓고 싶어 하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이다. 취재 도중 일부 취재원들에게 ‘받기 싫으면 너 혼자 받지 말지, 왜 공연히 난리냐?’라는 투의 말을 듣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정보공개를 꺼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공계 장학금을 무슨 잔치처럼 보도하는 기성 언론들의 보도태도, 그것을 또 대학입시에 이용하는 대학들을 보면서 비뚤어진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열풍의 여파를 실감할 수 있었고, 기성 언론들의 이공계에 대한 인식이 고작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안타까웠다.

이공계 장학금의 주요 수혜대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개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양심을 떠나서 우리 대부분이 이공계인이 될 것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