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꺼삐딴 리’의 세상에서 혜택받은 자의 책임
[78계단] ‘꺼삐딴 리’의 세상에서 혜택받은 자의 책임
  • 박종훈 기자
  • 승인 2004.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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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렇게도 세상을 몰라서야.’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몇몇 문구 중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도대체 세상이란 어떤 것이기에 우리는 이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하는 걸까. 왜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놈의 세상이라는 것을 그토록 철저하게 학습해야 하는 걸까.

지금 이 문구를 이 자리에서 감히 해부해보겠다는 시도도 어쩌면 괘씸죄에 걸릴 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자신들에 대한 사과로 착각한 것에도 모자라 자신의 주관과 소신대로 193명의 국회의원들이 저토록 흥분해서 대통령을 탄핵하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우린 대체 어떤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가가 궁금하다.

전광용의 소설<꺼삐딴 리>에서는 이인국이라는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적응 속도가 월등히 빨라 일본 아래의 세상, 소련 아래의 세상, 미국 아래의 세상 어디에서도 뛰어난 처세술을 발휘하는 ‘세상 학습가’로서의 모범 인물상이 등장한다. 사실, 일제 식민지 상황이나 군부 정권 시절 등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꺼삐딴 리’와 같은 삶의 자세가 그 위력을 발휘했을 법한 시대의 연속인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그럼 그 ‘꺼삐딴 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부와 권력을 가져다 주는 정치판을 그냥 지나갔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일청산 법안’ 처리에 지지부진하던 국회가 며칠 뒤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해내는 모습은 무척이나 부자연스럽다. 실제로 지금 국회의사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인물들-특히, 이번의 탄핵안을 주도한 측- 중 많은 수가 일제 시절이나 군부 독재 시절에 지배세력에 야합해서 축적한 부와 권력을 바탕으로 정치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비판받아 온 바도 있다.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대통령의 사과’를 명분삼아 국민의 여론에 반하는 탄핵정국을 이끌어오는 지금의 모습은 그들의 사회·도덕적인 책임감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실, 어느 누가 어떻다고 꼭 짚어서 말할 것 없이 우리 사회는 자기 안위만을 생각해온 특권 계층과의 전면적인 충돌에 직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탄핵이 국회의원들 숫자놀음으로 통과되는 지금의 상황은 ‘꺼삐딴 리’가 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그들이 장악한 세상에 적응하길 강요해온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내놓은 결과물이다.

바로 이 점이 우리 사회에서 능력을 갖추는 행운을 얻은 자들이 자각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꺼삐딴 리’들의 야비한 의식이 만들어 놓은 사회문화의 세례를 듬뿍 받아왔다. 우리는 그 동안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사용하는 법, 어떻게 남의 머리 위에 올라서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와 같은 처세술만을 배워오지 않았는가. 우리가 그동안 학습하길 강요받아야 했던 그 세상이란 것이 사실은 개혁의 대상이고 청산되어야 할 유물들로 가득차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심판받고 정치판이 개혁되더라도 그들이 지배해온 우리 사회의 문화와 제도 그리고 관습은 남는다. 그 이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청산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특히, 몇몇의 혜택 받은 식자층과 이 이상스러운 세상에서도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행운을 얻은 자들에게 이런 현실을 자각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책임은 더 크다. 더이상 ‘꺼삐딴 리’들이 왜곡해버린 이 세상에 너도나도 충실히 사회화하는 ‘관성의 법칙’을 두고 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