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사교육 흉내내는 공교육은 ‘위험’
[78계단] 사교육 흉내내는 공교육은 ‘위험’
  • 구정인 기자
  • 승인 200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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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7일 정부는 ‘사교육 대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후속대책으로 서울시 교육청이 25일 공교육 정상화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조처에는 e-Learning, 수준별 보충학습, 교원평가에 대한 개선 등 기존에도 몇 번씩 언급되었던 제도들도 있고 오히려 과거의 제도를 부활시킨 듯한 것도 있다.

이러한 조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수요자인 학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고심하고 노력한 흔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까지 교육부의 정책이 늘 그래왔듯이 학원가와 학부모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공교육이 노력해봤자 사교육을 넘을 수 있냐는 것이다.

공교육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은 공교육을 공급하는 측의 책임이 가장 크다. 수준이 뛰어난 학생과 떨어지는 학생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교육이 결국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몰리게 만든 것이다.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수요자의 요구에 정확히 맞춘 사교육을 공교육이 따라잡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해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승부’는 난 것이다.

앞으로 교육부가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단기적인 대책으로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으로 흡수하겠다는 정책은 학교의 학원화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과외나 학원수준의 강의를 TV나 인터넷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정책은 예산문제가 관건이며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서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다면 결국 다시 학원으로 몰리게 만들 것이다. 또 인프라나 사전의 수요조사에서 앞서 있는 사교육과 강의의 전반적인 면을 비교했을 때 얼마나 앞서나갈 수 있냐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그리고 수준별 이동수업과 수준별 보충학습을 제대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교육이 늘어나는 이유는 현직교사들의 수준을 믿지 못해서인데 현직교사로만 보충수업을 하고 시간의 제한도 둔다면 오히려 학생에게 보충수업과 학원의 이중고를 지우는 것이 될 것이다. 게다가 개학하자마자 학교는 예산이나 여건 등 아무것도 마련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들을 당장 시행해야 하니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사교육 시장이 커져서 공교육을 뛰어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현행 대학입시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학은 누구든지 갈 수 있는 상황에서 내 자식 좀 더 좋은 대학에 보내보자는 식의 사고방식이 팽배해지니 사교육이라는 반칙을 범하는 것이다. 점점 출발선이 앞으로 그어질수록 목표점에 빨리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대학입시는 도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하나의 분기점에 불과할 뿐이다. 조금 출발이 늦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교육은 눈앞에 보이는 대학입시를 최종점이라 생각하고 학부모들의 요구에 맞추어 점점 사설입시기관의 흉내를 내려 하고 있다. 진정으로 대학에서 필요한 인재는 수능 한 문제를 어떻게든 더 맞추어서 1점 더 올려놓은 학생이 아니다. 점수가 조금 낮더라도 꿈이 있고 열정을 가진 학생이 더 필요한 것이다. 지금 공교육으로는 점수 1점 더 높은 학생밖에 길러내지 못한다. 아니 사교육에 밀려서 1점 더 높은 학생도 다양한 소질을 가진 학생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정형화와 획일화된 4년제 소위 명문대학이라는 진로를 학생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수요자인 학생의 소질과 창의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인재개발로서의 교육의 기능은 죽은 것이다.

공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러 학생의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키워주는 것이다. 1점 더 높이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사교육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소질과 능력을 가진 학생 모두를 길러낼 수 있는 곳은 공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만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