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오름돌]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
[일흔여덟 오름돌]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
  • 문중선 기획부장
  • 승인 2000.02.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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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이라는 영화가 새해 초 전국에서 개봉되었다. 이 영화의 작품성은 평론가들한테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김영호는 젊은 시절 경찰로 근무한다. 그러면서 군사독재 정부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고문하고 붙잡는 역할을 담당한다. 비극이라고 할만한 이런 현실의 원인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라고 해야 할 것이나 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을 둘러싼 주위 인물들만이 등장한다.

사실 그가 특별히 악의를 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주위 형사들이 놀러가자고 얘기해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인 물고문에 성실히(?) 임하였으며 룸살롱의 미성년 취업자를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점을 두고 일부 비평에서는 순수하던 그를 망친 것은 파시스트 정권 내지 역사와 같은 추상적인 것들이었다고 아쉬워하기도 하였다. 김영호가 피해자였다고 하는 얘기인데, 영화를 보면 계속해서 김영호는 가해자로 등장한다. 이는 “역사의 물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김영호는 가해자였고 부끄러운 역사를 만든 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새해에 우리 시민사회에는 중요한 흐름이 있었다. 시민단체들이 연대해서 ‘낙천*낙선 운동’을 강력하게 펴나간 것이다. 물론 아직도 상황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몇몇 정당에서 낙선운동을 불법이라고 규정하며, 심지어 “야당 탄압을 위해 배후세력이 숨어있는 음모를 꾸민 것이다”라고 음모론까지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시민단체는 ‘시민불복종’에 따라 선거법 위반까지 감수하며 개혁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잠깐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시민단체는 누가 만들었는가? 이들 단체는 정부나 국회처럼 법에서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못박아 놓은 단체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시민단체는 바로 시민들이 스스로 모여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왜 이 모양이야?” “정치인들이 썩어서 투표할 맛이 떨어졌어.” 이렇게 방관하던 자세에서 우리 시민들은 스스로 권리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시민단체이고 낙선운동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 꾸준한 사회운동으로 우리 사회를 개혁하는 데 힘을 쏟았으며 개혁에 게으른 정치인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낙선운동까지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을 시민들 ‘스스로’ 모여 이룬 것이다.

그러던 중 필자는 며칠 전부터 각 기숙사 동마다 ‘프로야구 선수협 지지 서명서’가 게시판에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프로야구 선수협 문제는 요즘 유명한 사회적 관심사라서 대부분의 학우들이 잘 알고 있다. 필자에게 인상적인 것은 선수협 문제보다 그 서명서 자체였다. 어느 누구도 서명서를 게시판에 붙이라고 얘기하지도 않았지만 뜻 있는 일부 학우들이 서명서를 각 기숙사 동마다 일일이 붙여놓은 것이다. 여기에 총학생회와 같은 자치단체나 외부 단체가 준 영향은 전혀 없었다. 우리가 스스로 찾아 나선 것이다.

필자가 재작년부터 2년 동안 자치 단체를 볼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자치 단체의 활동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치 단체를 우리와 ‘별개의’ 단체로 생각하고 있는 학우들의 생각이었다. “학생식당 밥이 맛이 없네”, “어느어느 직원이 불친절해서 기분 나쁘다”, 또는 “다른 대학에서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 역시 우리학교는 아무 것도 안 해”라고 불평할 때 대부분 화살은 자치단체 쪽으로 날아갔다. “상황이 이런데 총학생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총학생회가 발빠르게 대처를 하지 못하니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죠”라고 얘기하면서.

그렇지만 사실은 우리들 스스로 했어야 하였던 것이다. 우리들 손으로 선거를 통해 총학생회를 구성했다고 해서 모든 일에 총학생회와 같은 자치단체가 나서주길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대표단체들이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김영호와 같이 수동적인 모범생이 될지 이번 총선시민연대 사람들과 같이 능동적인 시민이 될 것인지는 모두 우리 선택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번 선수협 지지 서명서 사건(?)을 보며 한 가닥 희망을 잡는다. 비록 올해는 총학생회나 동아리연합회와 같은 자치단체의 집행부 구성이 힘들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 스스로 하자’는 인식을 우리들에게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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