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오름돌] 포항공대의 착각
[일흔여덟 오름돌] 포항공대의 착각
  • 김용상 학원부장
  • 승인 2000.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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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들 동의없는 재정정책과 홍보정책 불신 불러
냉철한 판단과 과감한 결단으로 한계 극복 필요
우리 학교는 1986년 개교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여 지금은 소위 명문대학이라 불리는 위치에까지 오게 되었다. 태어난 지 열 살이 조금 넘은 우리 학교가 이토록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포항제철의 전폭적인 재정지원, 유능한 교수 유치, 우수 학생 선발, 선진 교육정책 시행, 적극적인 홍보 등등 포항공대의 전략은 승승장구하여 오늘날의 위치까지 왔다.

그러나 그 전략에는 몇 가지 맹점이 있었고, 최근에 일어난 일들은 이를 극명히 드러내주었다. 포항공대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첫 번째 착각, 포항공대는 막대한 재정지원을 과신하고 있으며 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개교 이후 끊이지 않았던 포항제철의 ‘물량공세’는 포항공대를 돈에 눈멀게 만들었다. 투자자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데 실패하여 불필요한 부분에 낭비되는 자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학생회관에 있는 의자를 교체하기 위해, 새 천년을 맞이하여 학교 홈페이지를 새롭게 단장하기 위해, 그리고 전산환경개선을 위해 이제껏 투자된 자금은 꼭 그 정도까지 투자해야 되는가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이다. 재작년 홍수로 인해 날림공사라는 우려를 샀던 실험동에 대한 보수공사 계획에는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렇듯 물질적으로 풍족함을 누리는 입장이라고는 하나, 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포항제철의 민영화 계획에 대해, 앞으로의 재정지원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 들려온다. 이번에 포항제철한테서 지원 받는 벤처자금 때문에 학교 운영에 가장 근간이 되는 마스터플랜이 수정된다. 포항공대가 재정에 얽매여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 복지회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되었던 식질개선안에도 “포항공대인에 걸맞는 최고의 식질을 보장한다”라는 철학이 담겨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포항공대는 최고의 연구시설과 최고의 학업여건, 최고의 생활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결코 명문대학을 만들 수 없다. 시설이 명문대학이라고 해서 그 학교가 명문대학이 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한 돈만으로는 포항공대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다. 제아무리 ‘비싼’ 정책을 시행한다 해도 구성원들의 지지와 동의가 없으면 ‘싸구려’ 정책만 못함을 모르는가.

두 번째 착각, 포항공대는 대학 홍보에 대한 잘못된 원칙을 고집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홍보인데도 그로 인해 재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기숙사 행사동 문제. 학생들은 방학중에 자기 방을 놔두고 이 방 저 방으로 옮겨다녀야 한다. 기숙사 몇 개 동은 ‘행사동’이라는 명목으로 방학동안에는 비워야 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행사동은 견학 온 고등학생, 새내기 새로 배움터(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새내기*학부모 등이 사용하게 된다.

자기 짐을 들고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수고스러움뿐만 아니라 버젓이 세간이 들어앉아 있는 남의 방을 방학동안 사용해야 한다는 점, 게다가 행사동에서 종종 일어나는 크고 작은 도난 사건 등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도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 홍보활동에 있어서 재학생들이 손해 입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원칙의 필요성이 전원 기숙사 체제인 우리 학교로서는 절실하다.

개교 초기 의욕적이고 참신했던 포항공대의 신념들이 있다. 우리는 이를 일컬어 ‘건학이념’이라고 부른다. 학교의 주요한 정책들을 수행할 때는 언제나 이 건학이념을 표방하였고, 이는 포항공대가 이만큼 클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재정확충에 있어서의 태생적 한계와 명확한 홍보원칙의 부재로 건학이념이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새 천년 포항공대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포항공대의 냉철한 판단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