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오름돌] 우리는 서러워한다…그래야만 한다
[일흔여덟 오름돌] 우리는 서러워한다…그래야만 한다
  • 백정현 기자
  • 승인 2000.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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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천년이 밝은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작년이 세기말의 우울함과 불안감을 상징하는 일년이었다면, 금년은 새로운 천년을 시작한다는 기대와 희망의 한 해가 되리라는 믿음의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연대로 대표할 수 있는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만 보더라도 이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학교에서의 기대와 희망은 어디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입시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신입생, 별 의사반영 없이 진행되고 결정된 학생식당의 식대인상, 그리고 총학을 비롯한 자치단체의 부재. 이 어느 것에서도 새천년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무학과 제도로 가는 첫걸음으로 시행된 금년 입시제도로 인해 2000년도 신입생은 전체의 절반 이상이 학과가 없는 상태에서 일년을 보내야 한다. 장기적으로 학과 선택의 자유뿐만 아니라, 실제 적성을 고려한 과를 선택할 수 있다는 시행배경에서만 본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신입생의 절대다수가 일부 인기학과에만 지원하려고 하며, 과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개인의 주관을 수립할 수 있는 객관적인 혹은 주관적인 자료를 얻기가 힘들다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 정책은 시행 이후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우려가 생긴다.

한편 4월 3일부터 학생식당은 질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만년적자에 시달리면서도 학생들의 영양공급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복지회와 학생처에게 굳이 찬사를 보낼 수만은 없는 이유는 또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학교측은 이러한 일이 불거질 때마다 대본을 읊듯이 하는 말이 있다. 학교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일일이 참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이번 식대인상을 놓고 그 결정에 있어서는 복지회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복지회 측은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과학과 국가와 미래를 생각하는’ 순수해야 할 포항공대생에게 그런 지저분한 정책결정 과정에의 참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인가?

다른 매장에서 벌어서 학생식당에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학생식당의 적자운영에 대해서 떳떳하게 우리의 입장만을 내세우기는 힘들다. 그러나 ‘포스텍 구성원들의 복리후생만을 위한다’는 복지회가 복지회 자체 이익금으로 식질을 개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식대를 50%나 올릴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서 학생처에서는 ‘수익자 부담원칙’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정책결정에 있어서는 배제를 원칙으로, 사용료 인상에 대해서는 수익자 부담을 원칙으로. 이것이 최고를 지향하는 포항공대의 논리인가.

다른 한편에서 볼 때 93년 문을 연 포스비가 학생들의 언론의 장이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이것은 TIMS도 마찬가지다. 연일 새로운 주제가 떠오르고 단 하루만 포스비나 TIMS를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 흐름을 놓쳐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사이버공간상에서 학생들은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단지 ‘이야기’에 그치고 마는 것에는 실망하게 된다.

이렇게 성숙된 학생들의 인식과 사상이 왜 ‘몸짓’으로는 표출되지 않는 것인가. 우리들에게는 차가운 머리만 있을 뿐 뜨겁게 불타는 가슴은 없단 말인가. 아니면 그따위 짓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인가. 진정 좋게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정말로 ‘과학과 국가와 미래’만을 생각할 뿐인가.

이제 위에서 나열했던, 그리고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병폐라 생각되는 것을 마음속에서 내놓고자 한다.

후보자가 없이 건너뛰어야 했던 93년 총학생회 선거가 2000년, 새천년에 다시 재연되었다. 학생들의 총학생회에 대한 전체적인 관심은 이 정도 수준에 머물렀던가? 포스비를 찾아보고, 그 누구와 이야기를 해 보아도 총학 구성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초등학교에도 있는 반장, 회장이 포항공대에는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도 서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학교 정책 결정과정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라고 보더라도, 그것을 조직적으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도록 만든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할 것이다.
4월 13일 대한민국 국민은 욕이라도 먹어 줄 국회의원 선거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총학생회장 한 명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