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다시 무은재 기념관에 서서
[78계단] 다시 무은재 기념관에 서서
  • 김정묵 기자
  • 승인 2003.12.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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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입학 원서를 내러 왔을 때 원서 접수처가 무은재기념관 1층이었던 것은 행운이었던 것 같다. 원서를 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돌아본 무은재 기념실은 포항공대의 오늘만을 보고 원서를 내기로 결심한 당시의 나에게는 제법 큰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입학하고 나서 신문사에 들어와 수습기자 교육을 받으며 배운 포항공대와 포항공대의 역사에 덧붙여 그간 취재를 하면서 만난 아버지뻘의 교수님들과 직원분들의 눈과 입과 글에서 나오는 열정을 보며 무엇이 저들을 이끌었는가 고민하기도 했다.

문득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대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졸업생 유치를 말하는 대기업에 4년동안 장학금을 받고 그 대기업에 가고자 하는 학생이 단 한명 밖에 없었다는. 모두 노벨상을 목표로 공부를 한다고. 제 3공화국 시절부터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과학입국 정책과 교육 하에서 자라난 사이언스 키드들이기도 했을 것이고 새로 설립된 대학을 덥석 선택한 용감한 선배들이기도 했겠지만 그러나 학생 모두들과 그러한 꿈을 공유하기까지는.

지난 여름, 졸업을 앞둔 4학년들이 진로를 두고 한창 고민하던 때였던 것 같다. 취업만을 얘기하는 학생과의 대화 끝에 우리 대학의 건학이념에 대한 강조를 포시스 게시판에 올린 어느 교수님이 기억난다.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는 우리 대학에서 우수한 자대 출신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건학이념에 부응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대학 선택을 두고 고민하는 입시생으로서 또는 취재를 다니면서 교직원들을 만나는 학생기자로서가 아닌 평범한 포항공대 학생으로서의 나는 우리 대학의 건학이념과 우리대학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사명감, 그리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진지하게 가졌는가 하고 돌이켜 보게 된다.

그 뿐인가. 이공계 위기라 하는 상황 속에 한국 과학기술계를 선도하는 입장에서 우리 대학 구성원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짚는 노력이 폭넓게 이뤄졌나. 과학기술의 급격한 진보로 ‘신의 영역’에까지 다다른 이 때에 과학기술과 맞닿아 있는 사회적 논의를 이끌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이 역설된 적이 있나. 단순히 연구 능력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소통능력과 열정까지 갖춘 이공계인의 모습이 제시된 적이 있나.

이러한 사회적 비전과 책무 뿐만이 아니라, 학내의 비전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이다. 선택과 집중으로 잘 정제된 대학 조직이지만 그간에 쌓여온 입장과 이해관계와 인식의 차가 적지 않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대학의 새로운 비전 역시 개교 초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제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간의 현실 인식과 문제 의식이 적극적으로 공유되어야만 제시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논의들이 제시된 바가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논의를 주도적으로 생산해야 할 이들은 누구인가.

포항공대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모든 포항공대인들의 마음의 고향이어야 할 무은재기념관을 고인의 흉상이 덩그러니 지키고 서있은 지도 벌써 일년. 복잡한 학내 사정으로 많이 미뤄지긴 했지만 이제 활용 방안을 확정하고 곧 새단장에 나선다니 반가운 맘이다. 그것도 당신이 생전에 그렇게 아꼈다는 학생들을 한껏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 대학의 중심으로 쓰인다니. 내년 10주기를 맞아 비어있던 무은재기념관을 새로 채워넣듯, 포항공대의 꿈을 새로이 채워넣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