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배움을 책임지는 교육
[78계단] 배움을 책임지는 교육
  • 문재석 기자
  • 승인 2003.10.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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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학에는 ‘Reader’라는 우리나라의 조교수 혹은 부교수에 준하는 직급이 있다. 설마 사전적 의미에 국한된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Reader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과거 책도 귀하고 문맹도 많던 시절, 단지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정보전달이라는 그 시대의 대학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사회에서의 교수의 역할은 그러한 전통적인 Reader의 역할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다양한 학문분야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속에서 어떤 목표를 제시하고 방향을 어떻게 잡아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교수의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소수정예교육을 대표적 장점으로 내세우는 우리학교에서도 연구에 밀려 교육이 등한시 되는 경향도 있는 듯해 우려가 된다. 작게는 한 과목의 강의목표에서부터, 크게는 하나의 전공을 결정짓는 커리큘럼까지 백화점 마냥 나열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며, 이나마도 연구의 뒷전으로 밀려 진지하지 못한 자세로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물론 교수와 과목, 학과에 따라 큰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교수의 전공과는 무관하면서 수강인원이 많은 기초필수과목이거나 커리큘럼상 들어가야만 하는 과목인 경우 학생들은 교수의 노력이 불충분한 강의를 간혹 접하게 된다. 이는 교육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피교육자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일지는 모르나, 이런 과목의 경우 수업이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 ‘내 전공 아니니 상관없다’ 혹은 ‘원래 학문은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논리 아래, 밀도있는 수업보다는 숙제나 시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을 할 것을 종용한다. 수업의 방식이나 내용은 교수 고유의 권한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부분이겠지만, 학생에게 목표제시는 하지 못한 채 단지 학생 스스로 하게만 하는 것은 일종의 책임회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재 우리 학교의 기초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는 전자계산입문수업은 실력의 편차에 따른 배려나, 수업 방식이나 평가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강의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교수와 조교의 내용 조율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않아 수업과 실습, 시험과 평가가 각각 따로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하나의 과목을 예로 들어 이야기했지만, 사실 과목의 교육방법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은 다른 과목 수강자에게서도 일부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다. 과목의 방향제시를 해주고, 과목간의 관계를 정립해주며, 커리큘럼을 학생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교육체계는 그런 부분까지 배려하지 않는다. 선수과목이 명확하지 않거나, 학업로드가 일부 학기에 편중되는 등의 커리큘럼도 문제지만, 학생의 이해와는 관계 없이 따라올 수 있는 사람만 따라오라는 식의 일부 교수들의 인식이 연구와 교육 사이에 맞추어져 있는 균형을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단지 과제나 시험의 어렵고 쉬움이 문제가 아니다. 우수한 학생들의 잠재능력을 어떻게 하면 더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부족이 연구중심대학이라는 이름이래 합리화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강의 또한 연구중심대학 교수들에게 대등하게 요구되는 책무이다. 물론 연구없는 교육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또 그만큼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는 연구는 대학에 요구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우리 대학이 포항공과연구소가 아닌, 포항공과대학교인 한 교육에 대한 교수들의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상위 5% 연구중심대학의 교수들은 평균적으로 시간의 32%를 연구에, 40%를 교육에 소모한다는 통계를 우리는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연구와 교육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는 교수의 경쟁력은 곧 대학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결정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포항공대가 지향하는 세계 수준의 대학은, 세계적 수준의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성립할 수 없다. 학생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고, 무엇을 “가르쳤는가”보다 무엇을 “배웠느냐”를 고려하는 스승이 되고자하는 교수의 자세를 학생들은 무엇보다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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