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공교육 정상화는 과연 ‘꿈’이던가
[78계단] 공교육 정상화는 과연 ‘꿈’이던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0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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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남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판교 신도시에 학원 단지를 조성해 이주를 촉진하겠다는 건설교통부의 계획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전부터 강남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원인이 타 지역보다 월등한 ‘교육여건’ 때문이란 점을 역으로 이용하겠다는 발상이다. 모처럼의 ‘기막힌’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신도시의 고층 아파트 촌과 쟁쟁한 학원들, 그리고 학생들을 가득 태우고 도로를 질주할 수많은 학원 셔틀 버스들을 그려보면 이 기막힌 계획의 성공 가능성은 무척이나 높아 보인다.
학원단지의 조성을 통한 신도시 건설 계획은 강남의 주택난 해소를 위해 제안되었다. 그리고 이 학원단지의 성공은 곧 공교육의 시대가 흘러가고 사교육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열악한 교육 환경과 학교 개혁의 실패로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공교육을 대신해 등장한 학원과 과외.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른바 ‘사교육’이 교육 본연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대학 입시 ‘매니지먼트’ 회사가 되어버린 대형 학원들이나, 전국구급의 입시전문가인 학원 강사들이 ‘전문 인력화’되어 가고 있지만 이것이 결코 경쟁력 있는 인력을 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대학 입시제도라는 게임의 룰 안에서 실수 없이 정답을 토해내도록 학생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소위 사교육계가 말하는 입시교육의 전형적 ‘모델’이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에서 대학 입시에 나오지 않는 지식까지 교육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마치 우물에서 숭늉 찾눈 것과 같은 현실이다.
우리 나라에서 교육이 갖는 의미는 경쟁력 있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기에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부 열심히 한다고 대학 가나요? 이젠 입시도 전문 관리시대입니다.’는 사교육이 이끄는 신교육 시대의 잠언이다. 가르쳐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예 고객이 지정한 대학을 보내주는 입시 매니지먼트 사업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장밋빛 산업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이 사라져버리지 않는 이상 불황의 걱정도 없다. 친구가 입시 매니지먼트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두 개의 매니지먼트 회사로부터 대학입시를 위한 관리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 가계의 곤란이나 가족들의 문화ㆍ여가 생활이라는 단어는 낄 틈이 없다. 게다가 더 양질의 관리를 받기 위해선 더 많은 액수의 교육비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판교 학원단지 조성계획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이런 기형적인 교육계를 개혁하기 위한 의지를 상실해버렸다는 위기감 때문이 아닐까? 지난 22일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이러한 판교 학원단지 조성사업에 대해 여러 논란이 일자 반대의사를 표시한 바는 있다. 이로써 판교 학원단지 조성계획의 성사 자체는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강남의 집값 안정화 대책으론 그 방법 밖에 없는데…’라는 이야기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자성과 개혁을 통한 공교육 정상화에 하루빨리 힘쓰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제 2, 3의 판교 학원단지 조성계획은 계속해서 머리를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