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오름돌] 성에 대한 몇가지 단상
[일흔여덟 오름돌] 성에 대한 몇가지 단상
  • 김혜리 기자
  • 승인 200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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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논란은 대중문화에 자유의 물결이 일면서부터 끊이지 않았지만,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일으킨 성 관계 사건들이 한꺼번에 각종 매체를 장식하면서 수많은 화제를 낳았다. 인터넷의 등장과 일본문화 개방 등과 맞물리며 한꺼번에 쏟아진 ‘O양 비디오’를 비롯한 각종 몰래카메라들의 유통 등은, 사실 우리 사회 뒷면에 감춰져왔던 구역질나는 성문화가 썩은 고름을 터뜨린 것에 불과하다. 설상가상으로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사회각계의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서둘러 성을 상품화시킨 언론사 간의 경쟁도 성문화의 치부를 확연히 드러내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성’이란 원색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진부한 형이상학적 논리보다도 오히려 이러한 ‘솔직함’이 성문제을 공론화시키는 지름길을 알려주는데 일조한다는 것이 언론의 생각인 것 같다. 걸쭉한 입심을 자랑하는 구성애씨와 어느 여자 비뇨기과 의사, 여자 경찰서장을 차례로 스타로 등장시키는가 하면, 몇몇 프로그램에서는 적나라한 부분도 감추지 않고 성을 들추면서 성개방의 발걸음에 뒤늦게라도 쫓아가 보려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우습게도 ‘아름다운 성’ 프로그램이 끝난 뒤 방송된 뉴스에서는 원조교제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률이 50%를 웃돌아 검찰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의하면 사회지도층에 의한 성폭력이 위험수위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중 교육자와 성직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40%를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지도층의 성폭력은 일반인보다 더 은밀히 자행되고, 교묘히 은폐되고 있어 신고되는 건수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썩은 고름은 고여 있으며, 단지 그 위에 여러 겹의 화장을 하고 있어 조심스러울 뿐이다.

이 사회는 건전한 성문화 이전에 공론화된 성담론의 단계조차 밟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던 영화 ‘거짓말’이나 ‘나도 때로는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등이 음란성 시시비비를 따지기 전에 왜곡된 성문화의 두꺼운 껍질을 깨자는 모험이자 도전장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닐까. 심지어 성개방론자들은 길들여지지 않은 자의 자유로움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나 성담론을 양지로 끌어내자는 이들의 외침은 아직 공허하고 음지에서 왜곡되고 위축되는 성은 사회와 문화 발전에 제동을 걸고 있다.

사회에서 자행되는 성폭력, 그 중에서도 사회 지도층의 성폭력은 지도층을 무수히 만들어낼 대학사회에도 반성을 요구한다. 쉬이 사라지지 않는 남성권위주의, 자리를 잡지 못한 여성운동, 인권에 대한 무관심, 여과없이 들어오는 포르노그라피…. 우리는 벌써 길들여진 것이 아닌가? 그리고 솔직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점점 여학우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 우리 학교는 특히나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성폭력이나 여성차별이 없을 리 없을 텐데도 드러나지 않는 것은 솔직하지 못함이요, 여학생회가 없다는 것에 특별히 토를 다는 사람이 없는 것은 길들여짐이다. 고름이 생겼다면 터뜨리고 건전한 성의 기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말없는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