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에서] 우리의 장래를 설계하며
[노벨동산에서] 우리의 장래를 설계하며
  • 남궁 원 / 물리 교수
  • 승인 2000.12.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기 자신만의 안락한 생활 위한
유망분야 선택은 바람직하지 않아

“장래에는 어느 분야가 유망할 것인가?”라는 화제는 요즈음의 대학 지원자나 그들의 부모, 전공을 결정해야 하는 대학생, 연구분야를 결정해야 하는 대학원생, 졸업이 임박한 박사학위 학생, 그리고 안정된 연구를 해온 교수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일 것이다.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인 칼 세이건(Carl Sagan)이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와 나눈 장래에 관한 대화에서 “할아버지, 나는 천문학자가 되겠습니다”라고 하니, 할아버지께서는 “그래, 별을 보는 것은 좋기는 한데 생활비는 누가 마련해 주냐?”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칼 세이건 같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세계 일류가 되면 유망분야를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국내에서 만이라도 일류가 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하고 싶은 분야를 마음놓고 선택할 터인데 현실은 그게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요즈음 이공분야에서는 생명과학과 정보통신 분야가 가장 인기가 있고, 과거에는 화공, 기계, 전기, 물리, 전자, 의학 등이 인기인 시절이 있었으며, 물리학 분야만 보더라도 핵물리, 입자물리, 플라즈마물리, 고체물리, 광학, 생물물리 등으로 인기가 변하여 왔다. 한편 지난 세기에는 최고의 인기를 두 번 누린 분야가 거의 없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인기있는 분야는 언제인가는 다른 분야에 정상을 양보해야 할 것이다. 지금 잘 나가는 분야들은 “장래의 인기 또는 유망분야가 아니다”해도 무방한데, 그렇다고 현재 인기분야를 선택하지 말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단지, 몇 년 후에 본인이 사회의 중견이 될 때에는 다른 분야가 더 각광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장래를 생각할 때에 현재를 기점으로 향후 우리사회가 어느 상태로 변화할지 생각하는 외삽방법이 있고, 또다른 방법으로는 아주 먼 훗날의 상황 몇 개를 가정하고 중간 상태를 생각하는 내삽방법이 있다. 후자는 일반적으로 중장기계획에 해당한다. 우선 아주 먼 장래에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가정하고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통인수를 분석해보면 그 속에서 자신의 적성에도 맞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분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30년 후를 상상해 보자. 한반도는 남북통일이 되어 8천만 내지 1억의 인구가 선진국 수준의 생활을 향유하며, 그 동안 선진화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환경분야도 잘 처리되어 살기 좋은 금수강산을 복원하였다고 가정하자. 미해결 부분으로는 중국대륙의 산업화로 인하여 황해와 대기오염 문제를 이웃나라들과 협력하여 개선 중이며, 국민소득은 현재보다 3배 증가한 3만 달러인 상태이다. 포항공대는 만 명 이상의 동문을 배출하였고 그 중에는 노벨 과학상을 수상하여 개교 45주년 기념행사에 최초의 노벨상수상 동문을 초빙하기로 한 상황이다. 지금 학부 학생들은 50대 초반에 있을 것이며, 포항공대 동문이 각계에서 핵심적인 기여를 했을 것이다. 세계 일류의 경쟁력은 확보되어 복지사회를 이룰 때에도 천문학자 뿐 아니라, 엔지니어, 교육자, 예술인, 의료인, 종교인, 정치인 등 각종 직업이 있을 터이고, 국민의 대다수는 그 당시의 인기분야에는 종사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사회 건설에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복지사회를 이룩하자면 현재 우리사회에서 개선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이 많이 쌓여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깨끗한 물의 공급, 맑은 대기의 유지, 그리고 청정 에너지 개발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 이공분야 전체의 참여가 요구된다. 이외에도 수많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고 그 가운데 본인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이 결정한 전공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안정된 직장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은퇴하면 저축과 퇴직금으로 못다한 취미생활을 살려 분주했던 인생을 돌아보며 여생을 차분히 보내겠다는 것이 평범한 인생 설계라 하자. 사회가 어찌 되든 나 자신은 노후를 대비하여 넉넉한 재원을 확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유망분야를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장래를 설계함에 있어서 나 자신이 가정에서 기둥과 희망인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는 우리가 바로 그 기둥이고 희망임을 생각하고, 기초과학이나 첨단과학기술이 우리사회 속에 존재함을 인식하며 유망분야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