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기여 입학제에 대한 단상
[78계단] 기여 입학제에 대한 단상
  • 박정준 기자
  • 승인 2001.05.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모대학에서 만든 기여우대제 실시계획안이 외부로 유출되며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즉 학교에 대한 물질적, 비물질적인 지대한 지원을 바탕으로 하는 기여 입학제의 실시이며, 이는 각계의 반론에 직면하고 있다. 반론의 요지는 공인화된 현대판 매관매직(賣官賣職)이며, 전통적으로 배움의 전당을 신성화해온 한국의 현실상, 그 배움의 자격을 돈을 받고 파는 데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학의 학생들 사이에는 학생의 권리를 자신이 포기하면,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학교에서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농담이 오간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기여입학제를 통해 대학의 부족한 재원을 보충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미국같이 상대적으로 졸업요건이 엄격한 곳에서는 실력이 없는 학생은 도태되니 단순히 학생 신분을 파는 것으로 볼 수 없으나, 한국 대학 그리고 대학교육의 현실상 실력없는 학생의 여과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부모를 잘 둔 덕에 명문대의 졸업장을 손에 쥐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입에 물고 태어난 은숟가락’에 금칠을 해주는 격이며 이것은 기회균등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수많은 찬성과 반대의견 속에서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많은 이들의 경계는 십분공감하나, 과연 이들이 이야기하는 ‘학생의 신분’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생각해보면 씁쓸해지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배움’에 많은 가치를 두었고 그 자체를 고귀한 것으로 신성시해왔으며, 그 배우는 자격에도 신분에 따른 제약을 두어 왔다. 그러나 공교육이 시행되며 그 배움의 자격은 구별이 없어졌으니 이 논란속에서 이야기되는 ‘학생의 신분’이란 것은 ‘어디에서 배웠냐?’가 문제가 되는 것으로서, 즉 학생증과 졸업장이 상징하는 ‘학벌’이 큰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싶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자격의 의미도 있겠으나 작금의 논쟁 상황속에 ‘매관매직’, ‘학생권리 판매’등의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전자, 즉 학벌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한국처럼 학벌 만능주의 사회속에서 ‘어느 대학’ 출신이란 것은 느슨하게나마 일종의 카스트제도 속에서의 신분증처럼 그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어느 정도 규정지어 버린다. 자신의 최종 학력과 출신 학교에 따라 거대한 피라미드 사회속에서 자신의 위치가 주어지고, 그것을 뚫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많이 바뀌어 졌다고는 하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여전히 젊은이들도 ‘어느 대학 출신’이란 것을 ‘특권’으로 인식하고 그런 ‘특권’이 수치화, 계량화되어 팔려 나가는 것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소위 입시지옥이라 일컬어지는 한국의 교육환경에서 자신이 행한 노력의 보답이라 생각하는 데에 따르는 보상심리라고 볼 수 있으나, 과연 ‘어느 대학의 학생이란 신분’에 대해서 이런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 옳은 일일까? 매관매직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 온당할까?

진정한 기회 균등의 시대는 사람의 능력을 안개처럼 가려버리는 이런 ‘학벌’이란 망토를 걷어 버리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이런 사회속에서는 사람의 신분을 결정짓는 매관매직에 비유함이 온당하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런 사회가 옳지 못하고 바꾸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생각부터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반응 속에 혹시 소중한 특권이 돈에 팔리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는지 돌이켜 볼일이다. 팔려나가는 것이 특권이 아니라면, 특권에 대한 신경질적인 보호본능이 없다면 논란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좀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자격이 물질적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며, 이런 식으로 팔려 나가는 자격이 노력을 통해 자격을 얻는 이들의 기회를 손상시키지 않는 제도적 보완(정원외 소수 입학)이 필요할 것이며, 기여입학제로 인해 크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한국 사학(私學)의 빈약한 재정 문제 해결 또한 신중하게 고려되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