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학교의 주인이 누구이더냐
[78계단] 학교의 주인이 누구이더냐
  • 김정묵 기자
  • 승인 2003.06.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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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각 학생 자치 단체들의 활동이 부쩍 눈에 띈다. 예년보다 써억 훌륭하고 즐거웠다는 평가를 받은 새내기 새배움터, 해맞이 한마당, 점심시간에 색깔을 주고 있는 PBS 방송, D.O.G.를 위시한 동 자치, 새로이 출범한 여학생회의 활동, 더 다양해진 과 행사, 총학이 앞장선 반전 시위 등등 여러 학생 자치 단체에서 신경쓰고 노력해서 만들어가고 있는 다양한 학교 생활은 지난 학교 생활동안 부족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실로 즐거운 일이나 더 많은 주문을 하고 싶다.

다양한 활동에 대한 시도와 고민이 이루어지는 것은 좋지만 그러한 고민들은 자치단체로서의 분명한 자의식에 기반해야 한다. 학생 자치 단체들은 학생회비로 운영되고 주요한 단체의 장들은 학생들의 투표로 선출된, ‘학생들의 대표’이다. 당연한 말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최근의 복지회 식대 인상안에 대한 총학과 기자회 등의 대응은 아쉬움을 자아냄과 동시에 대표로서의 역할 부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요구하고 있다.

복지회는 지난 4월 초에 복지회 이사회에서-총학 복지부 2명, 학과협의장, 여학회장, 기자회장 등 5명이 학생 이사- 학생식당 식대 인상안을 보고한 바 있다. 당시 총학 소속 두 이사는 참석하지 못했고 다른 자치단체장 이사들도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총학이 식대 인상안을 접한 것은 5월 19일, 복지회에서 인상안이 전달되었을 때였고, 학생들에게 공지된 것은 5월 23일이었다. 결국 기말 고사 기간과 방학으로 이어지는 시점에서 학생들이 인상안을 접하게 되어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고 복지회 행정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간 총학은 메일을 통해 의견과 자료요청을 받는 방법으로 ‘의견 수렴’에 나섰다. 그러나 온라인 상의 공지가 얼마나 전달력이 있고 참여와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가를 감안하면, 또한 학생식당의 절반의 이용자인 대학원생들에 대해 얼마나 전달이 되었는가를 감안하면 오프라인 공지와 설문조사를 수반하지 않은 이 같은 방식은 그 적극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또한 학생 자치 단체로서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원론적인 의견 표명조차 없었던 점은 학생의 대표 기구라기 보다는 복지회와 학생 간의 ‘소통 창구’에 가까운 모습이다.

학생들도 학내 구성원인지라 학교의 전체의 공익을 위해서라면 부담을 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부담을 반드시 학생들이 져야하는지, 학생들이 부담을 지지않아도 되는 대안은 없는지를 학생 자치 단체에서는 우선적으로 고민하여야 하고 그 결과물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여 여론을 이끌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특히나 기초 생활 및 복지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식대에 관해서라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라면 때늦은, 절차상의, 의견 수렴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학생 대다수의 여론은 사실상 인상안이 기정사실화되는 절차상의 수순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다. 각 단체장을 뽑는 투표는 학생들의 권리를 대의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상징한다. 장기적 안목으로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기본적으로는 ‘생각하는 대표’가 아니라, ‘행동하는 대표’가 되어야 한다.

한편, 단체장 경선이 드물어 공약 중심이 되기 힘들고 집행부 또한 전년도의 멤버가 따라오든지, 회장단과의 친분 관계 위주로 짜여지는 것이 일반적인 학내 사정상, 단체 내부에 조절 장치 혹은 견제 장치를 두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자기 비판 구조를 갖추기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고 다른 단체를 총괄하는 총학에 대해 견제 기능을 수행해야 할 학과협이 단순히 학회장들의 모임을 넘어서는 분명한 자의식을 가져야만 한다.

학생 자치 단체에 냉소적인 많은 학생들의 성향을 감안하면 이러한 주장이 공허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종합대학 규모의 십분의 일에 불과한, 말 그대로 소수정예의 포스테키안들의 중지를 한데 모으고 행동하게 하는 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일찍이 고 김호길 초대 총장은 “학교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학교의 주인은 재단이다”라며 직설적이지만 너무나 정확하게 답한 바 있다. 재정의 등록금 의존율이 50~90%에 다다르는 다른 사립대학과는 달리 현재에도 10%에 못 미치는 우리 대학에서의 학생들의 위치를 분명히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러나 학생 없는 곳이 학교가 될 수 있으랴. 교원, 직원과 함께 학생이 학교 운영의 주된 축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10%이상 가는 존재감을 만드는 것은 학생 자치 단체의 주요한 책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