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수구언론, 밥그릇 싸움에 뛰어들다
[78계단] 수구언론, 밥그릇 싸움에 뛰어들다
  • 류정은 기자
  • 승인 2003.03.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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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문화관광부 홍보업무 운영 방안>이 발표된 이후, 대다수 언론들이 ‘언론 탄압이 시작되었다’는 등의 비난과 정책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며 연일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언론과의 부적절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개방과 공평, 정보공개의 3대 원칙을 제시한 이번 문화관광부의 정책은 출입기자제의 등록제 전환, 주 1회의 정례브리핑 제도와 수시 브리핑의 병행, 적극적인 정보 공개, 취재의 범위와 방법, 취재 실명제, 언론 오보에 대한 대응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동안 거대 언론들에 치중되어있던 정보의 전달과정을 개선하고 정보를 여러 개체에 공평하게 개방한다는 의도가 강하다. 특히 인터넷 대안 언론과 같은 소수 언론에도 힘을 실어주고 그들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겠다는 처사다. 또한 취재실명제와 언론 오보에 대한 명확한 대응을 통해 언론의 ‘특종’에 혈안이 되어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언론의 태도를 극복해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러나 정책의 실상을 파헤치고 건전한 비판과 견제를 하는 것의 경계를 넘어서서 몰아가기식의 왜곡과 편파성 보도를 일삼는 언론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을 보면 그동안 별다른 제약없이, 취재해왔던 언론의 활동에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명확히 보도하고 여기서 우려되는 점을 지적했더라면 아마 생산적인 비판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론은 균형감각을 잃었다. 언론 자체가 언론 권력화의 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특히 이번 정책으로 특종의 독점에 위협을 받게 된 수구 언론권력들의 행태를 보면 그 사실은 자명하다.

조선일보는 17일자 사설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말인가>로 정책에 대한 집중 공격을 시작, 정책을 70년대 유신시절의 언론 통제와 탄압과 비교하면서 5공식 보도지침의 악령이 떠오른다는 식으로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또한 17일자 신문에서 정보소비자를 무시한 채 공급자 위주로 취재를 규제하는 이 같은 언론정책은 과거 어떤 권위주의적 정권도 하지 않던 일이라고 단정하고, 18일자에선 유신시절 첫 조치가 기자실 폐쇄였다면서 헌정 50년 동안 지금이 가장 언론의 암흑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는 한나라당 하순봉 국회의원의 말에 무게를 실었다. 19일자 시론에서는 문화부 조치를 ‘조폭적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나서기까지 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일보, 중앙일보를 비롯한 수구 언론들은 취재 응대의 통보, 취재 실명제에 관한 문제 등을 편파적으로 부각하면서 왜곡을 자행하고 있으며 기자실 폐지라는 사실만을 부각하고 기자실을 대체할 수 있는 취재 지원실의 설치에 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또한 무분별하게 자행되었던 익명보도로 인해 기사의 진위성마저 의심받았던 현실에 대한 반성은 전혀 하지 않은채 취재 실명제를 언론통제인 양 호도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부처의 업무에 대한 예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비상식적으로 이루어졌던 취재과정의 개선을 위해 함부로 출입하는 것을 자제해달라는 이야기에 취재권을 제한받는 행위라며 발끈하고 있다.

국민이 위임한 알 권리의 충족을 위해 뛰어야 하는 언론. 진정한 제 4의 권력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견제기구가 되려면 자성적인 반성과 비판 수용, 그와 더불어 내부의 개혁 의지가 있어야 한다. 언론으로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반론을 펼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정책 발표에서 정부의 입장 중 일부만을 부각시켜 ‘언론탄압’임을 입증하려 하는 언론의 태도. 사실의 곡해와 같은 주관적 억지성 주장은 독자에게도, 언론 자신에게도 경계대상 영순위다. 독자에게 진정으로 그들의 논리를 납득시키려면 공정성있는 보도를 해야하고 이성적인 비판을 해야 한다. 기존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로 사안을 전달해야 할 그들 자신의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된다.

언론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근간이 된다. 생산적인 비판을 통해서 정부와 기업을 견제하고 올바른 논쟁문화 정착의 한 축이 될 때 비로소 언론은 제 역할을 다하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상호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다른 축을 깎아내리고 매도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 하고 자신이 살기 위한 ‘발악’을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언론을 믿고 사회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언론기관들이 자정작용을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감정적 대응이 아닌 논리적 접근이 담긴 시각을 견지할 때 스스로 권력화하지 않아도 경외감을 분출하는 집단이 될 것이다. 언론이 진정한 ‘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반’으로서 생산적인 비판 여론의 창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