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78계단]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 임강훈 기자
  • 승인 2003.0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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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02학년도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총장석이 비어있는 학교를 졸업하는 졸업생들의 심정이 어떠할까. 총장석이 비어있은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총장직무대행체제가 운영된 지가 결국 한 학기가 지나고 한 해를 넘기면서, “설마 졸업식 때까지는 새총장이 오겠지”하는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어버렸다.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는 우리대학에서 한해를 넘기도록 총장석이 공석으로 남아있는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남다른’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새내기에게는 또 어떻게 비쳐질는지...

헌데 아직까지 어떻게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해명은 여전히 전무하다. 총장 선임자인 재단 이사회에서는 지난 10월 총장선임 연기에 대해 해명을 하고 빠른 시일내에 총장을 뽑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이지만, 이마저도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아직까지도 총장선임 연기 사유에 대해서는 유력한 후보자들과는 상호 요구조건이 맞지않았고, 다른 알맞은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애매한 답변만을 들려줄 뿐, 기한없는 연장만 계속되고 있다. 이대로는 다음 학기에도 총장이 선임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재단 이사회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총장감을 선발하는 일이 그리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총장 선임을 늦추고 있다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밖에는 판단할 수 없다. 다르게 해석하면 현 재단 이사회에게 총장을 선출할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제 재단 이사회에서도 입을 열어 총장선임이 어려워지고 있는 구체적인 원인을 밝히고, 총장추천위원회, 교수협의회 등의 학교 구성원들과 함께 새총장 선임에 발벗고 나서야 할 때이다.

재단 이사회의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총장선임의 권리는 없다고 하더라도, 학교규정을 어긴 비정상적인 장기적 총장선임 연기에 대해 책임을 묻고, 새총장 선임을 촉구할 권리와 의무는 구성원 전체에게 있는 것이다. 정보로부터 차단된 학생들의 움직임은 둘째치고라도 교수들의 (최소한 표면적으로의) 침묵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 1999년 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되었던 유상부 이사장은 취임 간담회에서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적극대처하고 변화를 선도하는 대학이 되어야한다”라고 설파하고, “건학이념을 잘 실현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던 바 있다. 지금의 재단 이사회의 행동은 변화 선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변화에 역행하고 있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와 시민단체에서 유상부 회장 및 임원들의 퇴진을 골자로 하는 포스코 개혁에 나섰다고 한다. 민영화된 포스코의 지배구조 개편은 사회가 바라는 일이지만, 우리학교로서는 안그래도 늦어진 총장선임에 또다른 지장을 주지 않을까하는 문제를 함께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개편이 일어나든, 재단 이사회는 이제까지 미뤄온 책임을 지고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해나가기를 바란다.

우리학교는 이제 개교 16년을 넘기면서 초창기에는 볼 수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들이 하나둘씩 표면화되고 있다. 이렇게 만연해가는 문제들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우리대학이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나가는 새로운 발판을 밟을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인만큼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고, 조금씩 안착하려하는 구성원들을 역동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선장이 없다고 닻을 내릴 수는 없는 길이다. 어떻게든 새로운 선장을 찾고, 물장구를 쳐서라도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것이 지금 당장 전 구성원들이 힘써야 할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