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오름돌] 두뇌유출로 국가경쟁력을 키운다?
[일흔여덟오름돌] 두뇌유출로 국가경쟁력을 키운다?
  • 임강훈 기자
  • 승인 2002.09.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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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정부는 내년예산에 300억원을 편성하여 이공계 대학 졸업생 1천명에게 해외유학경비로 1인당 1만~3만달러씩 4년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공계 기피현상을 막기위한 대책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학 관련자들을 비롯한 과학기술계는 “국내 대학원을 말소시키는 정책”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찬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산업계가 필요로하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국내 이공계 대학원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귀국 후 처우에 대한 방안을 함께 마련하자는 조건부 찬성의 의견도 있다. 한 일간지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교수들은 대부분 이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으나, 기업 CEO 및 관료들은 전반적으로 찬성하거나 조건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 정책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는 이들의 주장은 우수한 인재를 더 좋은 조건을 갖춘 해외로 유학시켜 세계일류급 연구인력을 양성해 국가연구인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당장의 우수인력 양성을 위해 국내 인력을 소모시켜 국내 대학원의 경쟁력을 실추시키게 된다면 그 엄청난 손실은 누가 채워줄 수 있겠는가. 국내 이공계 대학들은 이제 겨우 세계대학들과 경쟁할 만한 여건을 갖추어가고 있다. 그런데 국가의 우수인력을 외부로 유출시키겠다는 것은 어려움을 딛고 발전해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한편에서는 두뇌유출을 막으려면 국내 대학원들이 더욱 경쟁력을 갖추면 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우수한 학생 없이 경쟁력있는 대학원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외국으로 나갔던 우수인력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온다고 국내 대학원들도 저절로 경쟁력이 생기지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들어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푸대접 때문에 학위를 받고도 귀국하지 않는 유학생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유학생들이 귀국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국제경제연구원(IMD)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유출지수는 1997년 6.74에서 지난해 4.11로 크게 떨어져 일본(6.83)이나 대만(5.09), 중국(4.88)보다도 두뇌 유출이 훨씬 심각한 상태이다.

이렇듯 국내 대학원들이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공황상태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우수인력을 붙잡아 두지는 못할망정, 외부로 나가는 것을 장려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미 영국, 중국 등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미국으로 건너간 두뇌를 귀국시키기 위해 연구원들의 봉급을 대폭 인상하거나 각종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두뇌유출 막기 전쟁에 돌입한 상태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우수인력들을 해외로 내보내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겠다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흥망과 성패는 바로 눈앞의 일을 보고는 내다볼 수 없는 것이다.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야하는 것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유학생 국비장학금지원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당장의 질책만 슬쩍 피해보겠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정말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하고 국가 과학기술의 진흥을 꾀한다면 국내 대학원의 경쟁력을 키우고 우리가 외국으로부터 우수한 인력을 끌어올 수 있는 토대구축이 보다 절실하다. 미국이 오늘과 같은 강국이 된 것은 2차대전 이후부터 MIT 등의 우수 이공계 대학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전세계의 유학생과 고급 과학기술인력을 끌어들이는데 온 힘들 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로부터 우수인력을 끌어모을 생각은 하지 않고 언제까지 선진국으로부터 배워오려고만 할 것인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해외유학생 국비장학금지급 정책 도입은 국내 대학원을 궤멸시키는 두뇌 유출 프로그램의 역할만 하게 될 뿐이다. 우리나라의 이공계 대학도 연구시설이나 교육수준면에서는 이제 세계와 경쟁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한 가능성을 말살시키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막기위해 국내 과학기술인의 대우 개선, 연구환경 조성에 힘쓰지는 못할망정 뛰어난 인재들을 외국으로 배출하려는 모순적인 정책은 하루빨리 재검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