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오름돌] 포기 권하는 사회
[일흔여덟오름돌] 포기 권하는 사회
  • 배익현 기자
  • 승인 2002.05.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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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는 교과목 수강과 관련하여 수강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수강취소, 수강포기, 재수강 등의 학점관리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수강취소는 학기 시작 후 3주이내에 주어지는 취소기간동안 수강신청을 말 그대로 취소하는 것이다. 수강포기는 취소기간이 지난 후 학기 시작부터 9주 이내의 기간동안에 끝까지 해당 과목을 이수할 자신이 없을때 수강을 그만두는 것인데, 이 때에는 ‘W(withdrawal)’마크를 명기한다는 것이 다르다. 반면 재수강은 조금 다른 것으로 이미 학점을 받은 후에 다시 과목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최고학점이 B+까지로 제한되는 단서가 있다.

최근 포시스 문의응답게시판과 포스비에 수강 포기를 하고나서 그 과목을 다시 수강할 경우에 학사관리팀에 요청을 하면 W기록을 지워준다는 글이 올라와 잠깐 논란이 되었다. W기록을 지워준다니. 그런데 사실을 알고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학사관리팀에 확인해 본 결과 우리학교의 정책은 W에 대해서 특별히 불이익을 주는 편이 아니라서, 지금껏 학생들이 요청할 경우에는 기록을 말소해 주기도 했다한다. 그러던 것이 공식적으로 승인을 얻게 되어서, 아직까지는 전산 프로그램 문제로 유보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포시스에서 재수강 신청을 할 경우 자동으로 W기록이 지워지도록 할 예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따지고 보면 결국 현행 제도에서는 학생들은 수강취소, 수강포기 까지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지만 재수강을 할 경우에는 학점제한이란 불이익을 받게 되어 있다. 보통 수강포기 기간이 중간고사 이후까지 이므로 중간고사를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 과목 수강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셈이다. 즉 관련부서에서 학생들의 편의를 더욱 봐주게 한 것이 강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듣는 경우에 오히려 더 손해가 될 수도 있는 이상하고 불합리한 상황을 불러오고 있다. 또한 그 과목을 들을 여력이 있는 중간고사 낙오자의 대부분을 W를 찍게 만드는 묘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수강포기 제도는 학교마다 다르지만, 성적표에 W라는 의미심장(?)한 마크를 달고 나오게 하는 것은 학생들이 깊이 생각지 않고 수강신청을 했다가 이런식으로 쉽게 포기해 버리는 식의 태도를 방지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다시말해 해당과목을 듣다가 어쩔 수 없이 포기해 버린 적이 있다는 것을 기록해 둠으로써 조금 더 수강 신청과 포기에 신중을 기하게 하자는 일종의 경고장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수강을 중도 포기하는 댓가로 받는 사회적이고 암묵적인 벌점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우리학교 총학생회 행정관련 안내문에는 “수강 포기는 취직이나 대학원 진학 등에서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강신청을 할 때 가급적 취사선택을 해서 수강포기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나와있고, 사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가급적 W는 피하자는 것이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식이다.

그런데 이런 경고장치가 종이 호랑이에 지나지 않는 우리 학교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너무 쉽게 W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객관적으로 타학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은 학사경고선과 많은 학업량이 이런 경향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애초에 수업에 더 충실히 임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련된 W제도는 처음의 취지와는 맞지 않게 오히려 몇몇 학점이 나오지 않을 과목을 벌점없이 자르는 ‘유용한’ 수단으로만 전락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측은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학점관리제도를 정비해야 할 상황이라 생각된다. 과거 몇 년간 갑자기 전에 없던 재수강에서의 학점제한이 생기고 성적표기법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그때 그때의 문제들에 따라 학점관리제도를 변화시켜 오다 보니 문제점이 생겨났다. 애초에 재수강에 대한 학점제한 제도가 생길 때에는 괜찮은 학점을 받은 학생들이 단지 A+를 받기 위해 이 과목을 다시 듣는데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을 막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던 것이 현행의 W를 벌점없이 인정하는 제도와 맞물려 끝까지 강의를 듣고 재수강을 할바엔 일찌감치 W를 찍고 학점제한 없는 ‘초(初)수강’을 하는게 낫다는 이상한 상황을 빚어내고 있다. 학습장려 차원에서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고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하나같이 훌륭한 이러한 제도들이 종합적으로는 기회를 봐서 수강과목을 포기하기를 권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아이러니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