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오름돌] 분반제도 어떻게 할 것인가
[일흔여덟오름돌] 분반제도 어떻게 할 것인가
  • 양승효 기자
  • 승인 2002.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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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는 2000학년부터 학과 구별없이 신입생을 선발하여 1학년을 마친 후 원하는 학과에 지원하는 무학과제도를 실시해 오고 있다. 첫해였던 지난 2000년에는 특별한 계획없이 일단 선발하고 보자라는 식으로 신입생들을 뽑은 탓에 신입생들의 학과배정문제가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학과배정이 끝난 후에는 전과문제 등 원치 않은 학과에 가게 된 학우들의 불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저기 탈이 많은 무학과제도지만 나름대로 성과라고 평가받는 것이 있다. 바로 ‘분반제도’다. 하지만 이 분반제도에도 문제점이 없지 않다.

분반제도는 쉽게 말해서 고등학교때처럼 성적순으로 반을 가른 것으로 우리학교의 경우 한 분반당 20여명씩 15분반을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는 모든 신입생들이 학과를 배정받고 입학했기 때문에 각 학과 선배들이 신입생을 오리엔테이션 기간부터 책임을 지고 학교생활을 안내해왔다. 하지만 무학과제도의 실시로 각 학과에서 자기 학과로 올지도 안올지도 모르는 신입생들을 책임질 수 없게 됐고 이를 보완하고자 마련한 것이 분반제도인 것이다.
이러한 분반제도를 통해 학교측은 학과 없는 신입생들을 보다 쉽게 관리할 수 있게 하고, 신입생들은 평소 알기 힘든 타학과 동기들을 많이 알게 됐으며,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 되는 등 당초 의도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특히 타학과 동기들과 친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자칫 자기만의 학과라는 ‘우물’에서 벗어나 학제간의 연구 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로도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2001년 들어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 신입생이었던 00학번 학우들은 다시 분반제도가 실시된 01학번들의 선배가 되었다. 그리고 00학번 학우들은 다시 학과로 나누어져 각 학과의 ‘신입생’이 되었다. 선배임과 동시에 신입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서 오는 혼란이 학과에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면서 학부생들의 대학생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각 학과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학과에서 학과의 단결력이 이전만큼 못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주범으로 00학번이 도마위에 올랐다. 학과가 배정된지 1년이 지났지만 분반제도의 영향으로 학과에 어울리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학우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00학번이 이런데에는 이들 학번들이 분반으로 운영된 탓에 바로 윗 학번 선배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동아리 등을 제외하곤 특별히 선배들과 만나서 인생에 대해서, 진로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바로 윗선배 이름조차 잘 모를 때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혹자는 자신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학생활에서 좋은 선배, 후배와의 만남은 같은 길을 갈지 모르는 선배, 이미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로서 커다란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로 인해 벌써부터 팀즈와 포스비에선 분반제도를 유지할 지, 학과제도로 돌아갈지에 대해서 조심스런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분반제도가 학과 적응에 문제가 있다고 당장 학과제도로 돌아서기엔 걸림돌이 없지 않다. 이번에 새로 들어오는 신입생의 경우 무학과 신입생들은 전체 신입생 정원의 30%인 90여명에 불과하다. 학과제도를 택할 경우 과연 이들은 어느 과에 배정받아야 하는가? 어떻게 처음부터 원하는 학과를 배정받는다고 치자. 그렇게 1년을 다닌 후 여러 학과를 알아본 후 원하는 학과를 배정받는 무학과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일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분반제도로 인해 학과 선배와의 만남의 자리는 가지기 어려워진대신 예년보다 적극적으로 동아리활동에 참여하고, 타과생을 보다 쉽게 알 수 있게 되는 등 이 제도 역시 아예 없어버리기엔 무리수가 따른다.

이제 새로운 신입생이 입학할 때도 두어달 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학교측의 공식입장도 불분명한 상태이고, 새내기 새배움터 준비위원회에서도 의견만 분분할 뿐이다. 처음부터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면 이렇게 왈가왈부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학과제도가 실시된지도 만 2년, 이제 양쪽 제도를 다 시험해 본 우리는 어떠한 결말을 찾아야 할 때이다. 무학과 제도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으면서 학과의 연대감이 사라지지 않는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 앞으로 적어도 2, 3년간은 현행 입시가 유지된다. 여기서 제대로 길을 닦아 놓지 않는다면 학부생들의 대학생활 전반이 흐트러질 뿐만 아니라 교육정책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관심과 신중하고도 적극적인 정책적 판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