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오름돌] ‘비온 뒤에 땅이 굳을 수 있도록 해야’
[일흔여덟오름돌] ‘비온 뒤에 땅이 굳을 수 있도록 해야’
  • 신동민 기자
  • 승인 2001.1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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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어난 논문표절 사건으로 한동안 관련학계는 물론 교내에도 적지않은 술렁임이 있었다. 세계적인 유명학회지에 버젓이 표절논문이 실렸다는 자체도 놀라웠지만 그 논문에 우리학교 교수 이름도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유명 일간지의 사설에서처럼 “학계를 향한 더러운 테러”였고 그 여파로 국내의 관련학계와 관련대학은 엄청난 이미지 실추를 감수해야했다.

그 교수는 ‘Third author’로 이름이 올려졌다가 사건의 당사자이자 피해자로서 여기저기서 터지는 분노와 경멸감 사이에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다. 현재로서는 그를 양심없는 표절 교수로 매도하기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표절시비에 휘말린 불쌍한 피해자로 동정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박사과정의 학생이 논문을 내면 그 연구에 직접적인 참여를 한 것이 아니더라도 보통 지도교수의 이름이 같이 실리는 일이 많다. 실제로 논문을 쓰면서 알게모르게 그 지도교수의 contribution을 받게 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 그 논문의 표현을 검토해줬다든지 해서 이름이 올라가기도 하는데 이 또한 contribution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논문 당사자가 원하면 또는 관행에 따라 코멘트한 교수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현재 학계에서 아주 어색한 일은 아니다.

그 교수의 경우도 논문의 영어 표현을 봐주고 이름이 올라간 케이스인데 어찌보면 학계의 관행에 따라 무심코 행동했다가 ‘재수없게’ 걸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논문이 표절인 줄 몰랐다고 해명할수록 자신의 이름이 실리는 정당성을 스스로 깎아먹어 버리는 딜레마에 놓여있기에 실제로 표절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책임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관행이었다’라는 말 하나로 논문내용에 관련이 없으면서 이름이 오른 점은 윤리적 측면만 보더라도 떳떳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러한 관행의 도덕성이나 정당성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이번사건을 대하는 우리학교와 학생의 태도를 볼 때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든다.

흔히 우리 민족은 무슨 일이든 쉽게 잊는다고들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가스폭발사고 같은 어마어마한 재해가 일어나도 그 때만 ‘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우리 모두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한다.’며 시끌시끌 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어느새부터는 흐지부지 잊어간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철저히 검증하고 고치려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는 사회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 악순환의 무한한 반복만이 있을 뿐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포항공대는 스스로가 아직 건강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같은 일을 계기로 우리학교에서부터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고, 책임을 질 부분이 있다면 말끔히 처리하면서 구성원 간에 서로 알 것은 알고, 고칠 것은 고치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학교도 하나의 조직인 만큼 자신의 치부를 일부러 들추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학생들의 자세도 중요하다. ‘이런 일이 생기면 이미지 나빠져서 걱정이다.’ 같은 단순한 반응이 아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학교에서는 이런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묻고 그 답을 학교에 요구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일을 접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모습도 필요하다.

이번 일에 있어서의 학교의 대처는 중요하다. 학교도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임은 분명하지만 ‘좋은 일도 아닌데 굳이 알릴 필요있나. 시간이 지나가면 다들 잊겠지’ 하는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이는 일은 혹시라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학교 문의응답란에 올라오는 표절에 관한 질문이나 논쟁을 삭제하는 것 정도야 학교 홈페이지 관리라는 명분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겠다. 하지만 학교에 있어서 이미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학교의 연구원들은 논문낼 때의 불합리하거나 비양심적인 행동은 없는가?’에 대한 의문을 자체적으로 던져보고 반성하려는 분위기가 학교에 조성되는 것이 외부인이 우리학교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이미지 관리’보다 더욱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