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오름돌] 패러디 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
[일흔여덟 오름돌] 패러디 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
  • 신동민 기자
  • 승인 2001.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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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격권, 저작재산권, 사후승인. 우리에게 이러한 단어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음치가수 이재수가 내 놓은 ‘컴배콤’이란 패러디 곡을 가지고 원작자 서태지와 이재수 간의 논쟁이 법정으로까지 치닫게 되면서 그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재수 측은 서태지의 대표곡 중 하나인 ‘컴백홈’을 패러디한 ‘컴배콤’을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만든 뒤 상업적인 판매를 위해 원작자인 서태지 측에 승인허가를 요청하였다. 서태지는 작품이 자신에게 모욕을 준다고 느끼고, 승인을 거부하지만 이재수 측은 이를 무시하고 음반을 출시했고 사후 승인이란 제도를 이용해 서태지 측의 항변을 무마시키려 하였다. 세부적인 사항은 양측의 주장에 엇갈리는 부분이 많고 ‘사실확인’ 같은 문제는 법정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니 거기에 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가 좀 더 관심있게 봐야 할 것은 누가 옳으냐가 아닌 이 사건으로 전면에 부상한 ‘패러디 문화’라는 사회적 현상이다.

패러디에 관한 법적인 문제는 선진국에서도 아직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저작권에 대한 분쟁이 생겼을 경우,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입장이며 패러디 대상의 관용과 실행자의 양심이 균형을 이루어 명확한 법이 없이도 큰 탈 없이 넘어가고 있다. 아직 패러디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나온 적이 없고 개념 정립마저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이 사건은 당사자 간의 문제이면서도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었다.

이재수 측을 옹호하는 쪽에선 서태지의 행동을 ‘표현의 자유’의 침해라는 입장이다. 정치인을 풍자하는데 당사자의 허락을 굳이 받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가요를 패러디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여기에 대해 서태지 측은 자기 곡에 대한 깊이 있는 비판없이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이용했으므로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박한다. 특히 서태지 측이 중점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저작 인격권’이란 원작자 고유의 권리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이재수 측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 ‘컴배콤’ 뮤직비디오를 보며 모욕감을 느낀 것은 서태지 개인의 문제이지만 그런 감정 또한 매우 주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한 애매함이 패러디의 명확한 정의를 규명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어떤 방향이든 아직 패러디에 대한 잣대가 정확히 서 있지 않은 우리 실정상 이 사건의 결과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많은 문화 관련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저급한 패러디가 양산되는 게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허약하고 단조로운 기존 가요계에 이러한 풍조가 확산될 경우, 단지 재미만을 위한 모방과 변형을 통한 쉬운 돈벌이의 수단으로 패러디가 사용될 가능성이 우리 가요계에는 충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의 고통을 피하고 원작에 가벼운 변화만 줌으로써 속된 말로 ‘한 탕’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게 우리 가요계의 현실이다. 물론 서태지의 입장에도 문제는 있다.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는다면 문제삼지 않겠다는 그의 말엔 일리가 있으나, ‘원작자의 권리’와 ‘그 곡을 패러디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균형은 외면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아무리 질 낮은 패러디라고 해서, 그리고 상업적으로 이용된다고 해서 그것을 되고 안 되고를 판단할 권리는 언제나 본인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진 음악문화를 가지기 위해서는 패러디 관련 분야도 빠트릴 수 없다. 돈벌이로 시작하는 일이라도 어떻게라도 시작이 되면 나름대로 올바른 문화로 정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이번 패러디 건도 언젠가는 한 번 거쳐야 할 예견된 진통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우퍼 엔터테인먼트 측이 언론 플레이를 펼친다느니, 서태지 속이 너무 좁다느니 하는 말은 잠시 접어두자.

우리는 대중 문화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우리들의 판단에 따라 앞으로의 가요 문화의 판도가 변할 수 있다. 패러디를 가장한 무책임한 카피가 양산되는 저급 문화가 판을 치게 될 지, 원작자의 관용과 제작자의 양심이 어우러지는 문화가 될 지는 법원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 층 더 심도있는 패러디에 대한 고민과 생산적인 토론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만 우리 사회는 보다 바람직한 패러디 문화를 향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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