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에서] 영어강의에 관한 단상(斷想)
[노벨동산에서] 영어강의에 관한 단상(斷想)
  • 이정림 / 수학 교수
  • 승인 200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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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림 / 수학교수
최근 들어 우리나라 대학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려는 열풍이 불고 있다. 현재 서울대, KAIST 등에서는 대학원 수준의 전공과목을 영어로만 강의하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고 들었다. 우리대학도 2, 3년 후부터는 모든 대학원 강의는 영어로만 할 계획이라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학 캠퍼스를 외국인이 와서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 ‘Bilingual 캠퍼스’로 만든다는 것이다.

영어로 강의하는 학부 전공과목으로는 서울대 7%, KAIST 15%, 아주대 10%, 우리대학은 4.5%로 발표되었다. 앞으로는 학부 전공과목도 20∼30%를 영어로만 강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번 학기는 나의 퇴임전 마지막 학기다. 담당하게 된 교과목은 학부 3, 4학년 수준의 일반위상수학(General Topology)인데 영어로 강의할 계획이다. 우리대학에 수학과가 생기고 나서 한국인에 의한 영어강의는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과거에 외국인 방문교수들에 의해서 학부강의를 영어로 한 일은 비교적 많았는데 그때마다 학생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비스과목들을 포함해서 개설해야 할 과목수가 교수에 비해서 과다했던 수학과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대학은 개교 직후부터 설립자인 고 김호길 학장이 우리 대학의 국제화를 위해서 외국에서 오랫동안 영어로 강의한 경험이 있는 교수들은 영어로 강의할 것을 권장해 왔다. 따라서 나도 여기에 호응하여 학기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영어로 강의하는데 대한 찬반을 물어보곤 했는데, 그때 학생들 의견이 ‘지금 진행하고 있는 강의는 교재나 과제물 등이 모두 영어로 되어있는데, 강의마저 영어로 한다면 수학도 영어도 못 배운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지난날 나의 영어 수학강의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언급하자면 1950년 6.25사변 직전에 서울대에 입학하여 부산 피난 중에 개교했던 전시연합대학에 참석하여 수학강의를 수강했다. 당시 수학 교수는 3명이었으며 교재는 영어, 독일어, 일본어 등으로 쓰여진 책들이었다. 물론 강의는 한국어로 했다. 나는 그 당시 미군부대에서 그리고 미국 선교사들과의 많은 대화를 통하여 영어회화에 익숙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 후 1956년 유학했던 대학의 강의는 미국 학생들을 상대로 하였기 때문에 나는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는 비록 영어로 진행되었지만, 읽을 수 있는 교재가 있고 강의내용 중의 중요한 사항은 칠판에 쓰기 때문에 수학을 배우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후 석ㆍ박사과정을 마치고 미시간대학에 강사로 임용되어 처음 정식으로 영어 강의한 것은 1960년이었다. 그 당시에도 외국인 특히 대만겴瞿퍊인도인 등의 교육조교들에 의해서 1, 2학년 수준의 기초수학과목들의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불평을 토로하곤 했다. 이런 일을 의식하여 언젠가 한 번은 주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많은 반에서 “너희들은 이제 고등학교 학생이 아닌 대학생들이야! 우리 대학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외국교수들의 외국액센트가 섞인 강의도 들을 수 있어야 해!”라고 말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후 17년간 주로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의 영어권 국가에서만 강의하다가 1977년에는 미국 AID지원으로 서울대학교 수학과에서 1년을 강의하게 되었는데, 한국인으로서 초청받은 것이 아니고 미국인으로 다른 미국인들과 같이 초청받은 것이다. 따라서 강의도 영어로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청중은 한국어로 강의 듣기를 원했을 것은 당연하다. 그때까지 21년간 수학은 영어로만 배우고 대화하고 강의를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다가 갑자기 한국어로 매 시간 강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강의내용을 영어로 쓴 것을 복사해서 나눠주고 강의 시간에는 칠판에는 영어로 쓰며 영어로 먼저 한번 말하고 각 문장의 번역을 한국말로 통역하듯이 했다. 그것은 국제화를 위해서가 아니고 수강생들에게 내용을 분명히 양쪽언어로 이해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우리 대학의 학부강의도 이런 식으로 하면 수학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대학 개교 이래 15년간 한국어로만 강의해 왔으니 이제 다시 영어로 강의한다는 것에 약간의 부담을 느끼는 점도 있지만, 내가 처음 전공으로 택했던 위상수학을 내가 처음 배웠던 언어로 가르치게 된 점이 나를 들뜨게 만든다. 다른 전공과목들도 학기초에는 영어와 한국어를 공용하는 뜻의 Bilingual강의를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이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