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화진단-1. 음주문화] 권하는 문화보다 즐기는 문화 정착시켜야
[대학문화진단-1. 음주문화] 권하는 문화보다 즐기는 문화 정착시켜야
  • 장희은 기자
  • 승인 2000.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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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포공이의 학기초 일기

“요즘 학기초라 바쁘다. 여기저기 술자리가 많다. 어제는 발대식이라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과 술을 마셨다. 술을 너무 마셔서 신입생들이 귀여웠다는 것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은 동문회라고 연락이 왔다. 방학이라서 보지 못했던 반가운 선후배들과 새로 들어온 동문 후배들을 만나러 나가야 한다. 아마 또 통집에서 모였다가 시장으로 2차를 나가겠지. 주말에는 군바리 친구 녀석이 휴가를 나온다고 한다. 동기들이 모이기로 했다. 다음 주에는 과 엠티를 간다. 학기 초라서 이것저것 할 것이 많지만 반가운 얼굴들과 술을 마시면서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 “

이것은 우리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우리 학교 학생들이 일주일에 적어도 1~2회의 술자리에 나간다. 특히 요즘 같은 학기 초에는 신입생 환영회, 동아리 모임, 동문회, 향우회 등 이런저런 술 모임들이 많고, 인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야 하는 자리는 다 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 우리는 왜 모임에서 술을 먹는가?

김경태(생명) 교수에 따르면, 술이 몸에 들어가면 알콜이 뇌의 세포막을 통과하여 신경 활성을 억제하게 되며, 불안을 느끼는 것이 억제되어 상대적으로 긴장을 풀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작용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술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원활하게 이끌어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과마다 매년 신입생에게 하는 사발식 등에서 보듯이, 술은 첫 대면의 껄끄러움을 극복하고 집단 의식을 강화하는 데 상당한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집단에의 동화를 강요하면서 고학번 선배가 저학번들에게 술을 많이 먹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신입생 유학기(무학과 1) 학우는 “요즘 술자리에서 선배들이 술을 억지로 먹이지 않아 친구들이 술자리를 꺼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자율적으로 분위기를 맞추어 적당히 마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되어야겠다.


▲꼭 술을 마셔야 하는가?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의 현실에서는 술 마시는 것 말고는 모여서 마땅히 할 만한 게 없다.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만 있다면 술 외의 다른 매개체들도 충분히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은 술만한 것이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신입생 인솔자를 맡은 손원대(산업 2) 학우는 “학기 초 신입생들에게 술을 억지로 먹이는 분위기가 싫어 O.T 첫째날 맥주 한 캔씩만 놓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다음날 소주 13병을 마시면서 서로 많이 친해졌고 분위기도 상당히 좋아졌다”고 말한다.

▲우리는 또 왜 술을 먹는가?

다른 것들을 찾아보면, 우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신다는 이유가 있다. 학생생활연구소 상담원 최명식 씨는 “술은 긴장을 풀어주면서 못해봤던 것을 가능하게 하며, 술을 심하게 먹는 사람은 술의 힘으로 자기 표현을 하고자 함이다”라고 말한다. 꼭 이런 극단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우리 학교처럼 학업의 부담이 커 생활 속에 제약으로 작용하는 곳에서는 더 술을 찾게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푼다면, 좀더 건전한 방향이 좋을 것이며, 실제로 에너지 소모적인 술 대신 생산적인 운동을 즐기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많은 사람이 술자리의 분위기가 좋아서 마신다고 말한다. 잘 아는 사람들끼리 편하게 한 캔씩 마시는 맥주는 무미건조한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까지 한다. 친한 사람들 몇몇이 조용히 깊이 있게 대화할 수 있는 술자리 분위기는 건전하고도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집단 심리를 위한 술의 도구적인 성격만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술자리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술의 맛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은 술 자체로도 목적이 될 수 있다”고 홍비학 씨(생명 석사 과정)는 말한다. 이때는 혼자서 마셔도 즐겁기 마련이다. 혼자 칵테일 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시더라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술을 지나치게 먹는 사람들

때로 우리는 지나치게 술을 마신다. “전날에 과음한 탓에 수업에 늦거나 아예 결석하는 학생들이 매년 학기초에 있으며 술 때문에 생긴 위병으로 휴학하는 경우도 몇 번 보았다.”어느 교수님의 말씀이다. 왜 이런 학생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는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을 멋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소위 ‘먹고 죽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생각 때문이다. 이것은 마구잡이로 뱃속에 채울 수 있는 양을 주량으로 치고 인정해주는 우리 나라의 잘못된 문화 교육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 나라 학생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아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계획하고 관리해나가는 자율적인 생활 태도가 미흡한 실정이다. 게다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기숙사 통제가 전혀 없는 우리 학교의 특성상 학생들은 절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자신의 의지밖에는 없어 자기 관리가 더욱 힘들다. 최명식 씨는 “술을 반드시 많이 먹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술에 의존적인 사람일수록 자기 관리를 잘 하지 못한다”며 “한번에 많이 마시는 사람보다 자주 마시는 사람이 더 술에 의존적이다”라고 했다.


▲술을 마시는 때

인문사회학부의 어느 교수님은 “외국의 우수한 대학의 경우, 월요일에서 금요일에 이르는 주중에는 공부를 하고, 주말에만 술을 마시는 것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며 “공부할 때와 놀 때를 확실하게 구별하는 것이 우리 학생들에게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술을 마시기 위해 흔히 찾는 통집의 경우를 보자. 통집 직원 김용운 씨는 “주말보다 주중에 더 많은 학생들이 온다. 모임이 많은 학기초 뿐 아니라 학기 중에도 주중에 자리가 90%이상 찬다”고 말한다.

우리의 술 문화는 개개인의 생산적인 삶 뿐 아니라 포스텍 의 경쟁력과도 연결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뿌리는 우리 학교의 고립적이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특징에서부터 술 권하기 좋아하는 한국 문화의 특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테지만,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음주문화는 ▲술을 자율적으로 마시는 문화 ▲술을 즐길 수 있는 문화 ▲술을 제대로 가르치는 문화 ▲술을 마실 때를 구별하는 문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