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 짝퉁
[노벨동산] 짝퉁
  • 장수영 / 산경 교수
  • 승인 2006.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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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액세서리, 짝퉁 티셔츠, 짝퉁 헨드폰, 이젠 짝퉁 자동차까지 있는 세상이다. 거의 모든 명품은 십중팔구 어디엔가 짝퉁이 있다. 그러다 보니 “짝퉁이 있어야 명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 그런지 삼성 헨드폰, 현대 자동차의 짝퉁들이 유통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해당 한국 기업들이 입게 될 피해가 적잖이 걱정이 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뿌듯하다. 이제는 우리도 명품을 만드는 나라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가 보다. 그런 정서 때문일까? 한국 대표 상품을 모방하는 중차대한 사기 사건을 보도할 때 ‘불량 유사품’, ‘위조품’이라는 ‘무거운’ 단어보다 ‘짝퉁’이라는 ‘깜찍한’ 느낌의 단어가 월등히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을 본다.

사실 짝퉁은 애초부터 짝퉁이라 드러내놓고 있거나 숨기고 있더라도, 너무 늦지만 않게 짝퉁임이 드러난다면 그리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한국의 수출산업 발전 초기에 ‘Made in Korea’를 달고 세계로 처음 수출된 제품들은 사실 “모양과 질에서 진품과 거의 같지만, 가격은 월등히 저렴한 짝퉁입니다”라고 처음부터 알리고 나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경우는 크게 문제삼을 것도 없다. 또한 짝퉁임을 숨겼더라도 결국 드러나기만 한다면 그 짝퉁을 만든 사람을 색출하여 그가 저지른 거짓에 대한 죄값을 물도록 하면 되기 때문에, 짝퉁이라 알려진 짝퉁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진정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짝퉁이 짝퉁인지 몰라서 짝퉁이 버젓이 진품 자리를 차지하고, 짝퉁을 오히려 진품이라 말하는 것이 대세일 때 생겨난다.

“유사품에 속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내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이 ‘편안’이 ‘평안’이 아니고, ‘부자’가 ‘잘 사는 사람’의 동의어일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유사품, 곧 짝퉁에 속지 말라는 말씀인데, 사실 숨가쁘고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 넋 놓고 살다 보면 짝퉁에 속기 쉽다. 내 손에 움킨 재물이 내 행복이려니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고, 내 몸이 편해지면 마음도 편해질 줄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몸이 편치 않고 고단한 삶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평안이 넘칠 수 있는 법이고, 가진 것이 많으면 오히려 깊은 걱정에 휘말리고, 마지막 가진 것까지 훌훌 털어주면서도 행복에 겨워할 수 있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니, ‘부자’가 ‘잘 산다’는 말의 동의어 일 수 없고, ‘편안’이 ‘평강’의 동의어일 수는 없다.

‘성적은 행복 순이 아니다’라는 영화제목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던 적이 있다. 내 생각엔 사실 ‘실력도 성적 순이 아니다.’ 그런데 세상은 성적, 곧 실적 순으로 실력을 평가하고, 그 실적에 맞추어 개개인 행복의 크기도 결정하려 한다. ‘실력’과 ‘실적’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사실 마땅한 대안이 없어 실력을 실적으로 ‘어림’해보는 것이지, 사실 ‘실적’은 ‘실력’의 짝퉁일 뿐이다. 짝퉁 유사품에 마음 뺏기어 진실된 삶의 재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동안 쌓아놓은 자신의 실적에, 받아놓은 성적에 온 세상을 얻은 듯 들떠 있거나 한없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 진다면 당신은 짝퉁에 속고 있는 것이다. 실적은 실력이 아니고, 행복은 실적 순이 아니다. 부질없이 짝퉁에 마음 빼앗기기 보다 진품에 착념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매년 이맘때면 그 성질 급한 벚꽃은 이파리 돋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눈부시게 피어난다. 새파란 새싹들과 같이 어우러진다면 더욱 좋으련만, 새싹이 돋아 새 이파리가 제 모습을 제법 추스를 때쯤 되어선 이미 벚꽃들은 생명을 다하고 바닥에 구른다. 이런 계절의 변화에서 삶의 지혜를 묵상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기쁨이다. 부디 성적에, 연구 실적에 마음 빼앗기는 짝퉁의 횡포가 없는 아름다운 봄, 진품의 봄을 우리모두 만끽하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