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기고] 본질적 의미 이해하면 자랑스러운 우리역사
[동문 기고] 본질적 의미 이해하면 자랑스러운 우리역사
  • 정재숙(홍콩과기대 석사과정)
  • 승인 2000.04.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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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재 순 서

1. 우리 교육 다시 보기
2. 우리 역사 다시 보기
영국의 수학자 Thomas Hardy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좋은 방향으로든지 나쁜 방향으로든지 나의 발견들이 세상의 편의에 아주 작은 영향도 주는 일이 없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라고 수학의 실용성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이제는 수학이 군사목적을 선두로 실생활에 많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떤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해가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이란 것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수학이 실용적이기 때문에 수학을 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당파싸움이란 현상을 지극히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아왔다. 백성들의 편의를 생각하기보다는 부모상을 몇 년 치루어야 하는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으로 편을 갈라 싸우느라, 또 중국 사대사상으로 중국철학만을 높이 사고 실제 다스리는데 필요한 실용적인 부분은 등한시하여 나라정치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가 그 근거들이었다. 실무능력과는 상관없이 시문이나 오래된 중국의 고전들을 외워서 쓴 것으로 뽑았다는 과거제도는 또 어떤가? 도대체 시문을 쓰는 능력과 제대로 백성을 다스리는 능력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것들은 중국 사대사상 때문에 생긴 무능력한 제도들인가?

우리 나라는 금속활자도 세계최초로 발명하고 자기네 글자도 만들어 쓰고 해시계와 측우기 등도 만들어 썼을 뿐 아니라, 천문현상을 관찰하여 기록했을 정도로 과학과 기술이 발전되었던 나라였다. 부정적으로 보이는 당쟁이나 과거제도가 결코 무지한 사대사상 때문에 그랬다고 보기엔 조선시대의 문화와 과학은 높은 경지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관리등용문인 과거제도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마도 그들이 실무를 할 수 있는 능력보다는 관리의 철학과 심성이 더 중요하다는 지극히 평범한 논리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실무능력이 뛰어나도 잘못된 철학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실무능력은 사람을 살리는 약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될 테니까.

이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중국의 심오한 고전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시문을 지을 정도의 지성과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이를 가진 사람이라면 나라를 화평하게 다스리는데 그야말로 적합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실무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깔보며 문화발전을 저해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당쟁도 이런 관점에서 한번 보자. 그들은 당익을 위해서 싸우긴 했지만 적어도 그 당파들은 서로 다른 철학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철학은 다스림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별로 다른 철학이랄 것도 없이 쓸데없이 당만 자꾸 만들어 당익만 챙기는 지금 세태에 비한다면 오히려 그 당시가 더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가 아니었을까? 당파의 존재란 제한적이나마 민주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당파싸움이 있었다는 자체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놓고 서양사람들이 350년 동안 소란을 떤 것이나 부모님 상을 몇 년 동안 해야하느냐는 문제로,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느냐는 문제로 조선의 유학자들이 소란을 떤 것을 보며 어느쪽이 우월하다고 하는 것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한쪽은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소란을 떨었던 것이고 다른 한쪽은 철학 문제를 풀기 위해 -싸움도 문제를 푸는 한 방법이다- 소란을 떤 것이다. 우리는 왜 전자는 우러러보며 배우려고 하지만 후자는 한심하게 여기고 버려야 한다고 하는 걸까? 전자는 수학이고 후자는 철학이라서? 아니 철학 중에서도 지엽적인 문제라서? 글쎄. 당시에는 옷 입는 법이나 몇 년 상을 치르느냐 하는 것이 핵심적인 철학적 의견을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 하는 문제였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실용적인 것이 선한 것이라는 가치관이 주입되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그리고 설령 실용적인 것이 선하다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실용적인 수학이나 과학이 -대부분 죽임을 전제로 하는 군사문제 덕에 이 학문들이 실용적이 되었다는 슬픈 사실은 일단 제쳐놓자- 전해지는데 수학자나 과학자가 가진 철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결국 철학 때문에 파생된 당쟁을 나쁘다고만 하는 것도 사실 논리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당시의 사회는 완벽한 것이었는가? 그렇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당쟁이나 과거제도가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게 들어온 단어는 ‘다양성’이었다. 즉 사물과 일을 보고 해석하는 관점들에 ‘다양함’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의 경직된 분위기에 있었다고 생각해 본다. 조선의 관리들은 너무 한 형식만을 고집한게 아닐까? 아무리 당시의 중국이 지금의 서양 나라들처럼 철학과 과학, 문화 등에서 뛰어나 중국문화를 받아들인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너무 한 형식에만 집착하고 중국 이외의 다른 문화나 우리가 가진 가능성들에 대해 너무 소홀히 한 것은 아닐까?

과학과 기술, 공예 등에 너무 소홀하지 않았다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고 측우기, 해시계와 문자를 만들어 내고 철갑선과 세계적인 도자기를 만들어 낸 나라의 기술이 왜 그렇게 어느 순간 멈춰버렸는가? 그리고 왜 우리의 생각은 또 한쪽으로만 굳어버렸는가? 만일 중국 중심이 아니라 소위 ‘오랑캐나라’라는 다른 나라들의 문물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시의 중국은 그러한 가능성을 보통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문화가 너무나도 앞서서 발전한 나라였을까? 지금 동양 사람들이 너도나도 서양에서 그들의 철학과 학문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현상을 보면서 비슷한 현상이 그 당시에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 역사에서 보아야 할 문제는 과거제도 자체의 문제나 당쟁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들은 그저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현상들이었을 뿐이다. 그 현상들을 만든 근본적인 이유,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다양성을 접하기 힘들었던 당시의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지방에서 일해야 하고, 어느 학교를 나와야 하는 등의 조건이 있어야 제대로 인정받는 것은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그 정도가 우리 사회의 발전에 방해가 될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우리에게 맞는 문화를 만들고 키워나가기 위해 필요한 다양성을 많이 접할 환경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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