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튀어보자
조금만 더 튀어보자
  • 박동수 / 컴공 4
  • 승인 2000.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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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해서부터 지금까지 4년 넘게 우리 학교 수업을 들었지만(필자는 현재 9학기째 재학 중), 학생들이 논리적 토론을 벌이는 경우를 만난 기억은 그리 흔치 않다. 특히 지식 전달과 암기 위주의 전공 과목 수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수는 정신 없이 칠판에 쓰거나 OHP 자료를 보며 끊임 없이 설명하고, 학생들은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노트에 받아적기에 바쁘다. 간혹 용감한(?) 학생 한명이 손을 들어 교수와 설전을 주고 받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무관심하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모나지 않게 행동하길 요구받은 우리들은, 대학에서도 예전과 변함 없이 암기, 주입식 수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필연적으로 사고 방식이 획일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학점 잘 받으려면 교과서 연습문제나 열심히 풀고 교수와 조교의 구미에 맞게 숙제 내고 시험 임박해서 가열차게 공부 좀 해주면 그만인데, 굳이 피곤하게 이러쿵 저러쿵 토론할 필요 있겠나. 그게 우리의 현주소다.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남들과 의견을 주고 받는 데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 공대생의 현실을 반영하기에 충분할 거라고 생각한다. 참다운 토론 문화를 몸소 체험할 기회를 갖지 못한 우리들은 매사에 소극적이고 서툴다. 가끔씩 교내 컴퓨터 통신망에서 발생한 토론을 지켜보고 있자면 내가 이 학교 학생이라는사실이 부끄러워질 정도이다. 온갖 인신공격과 논점일탈, 억지논리가 수없이 등장하고, 목소리 큰 소수에 의해 소극적인 다수가 무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긴, 우리들이 언제 열띤 토론을 통해 서로간의 합리적인 접합점을 찾는 연습을 해볼 기회조차 있었느냐는 말이다. 무사히 대학원 진학하려면 교수님들한테 찍히지 말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말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말이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들도 자신의 이론과 결과를 남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논리적 표현력과 토론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문사회학부에서는 작년부터 토론, 글쓰기에 관한 강좌를 대폭 늘렸다.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나, 그런 강의 열심히 듣는다고 해서 대번에 합리적 토론 능력이 신장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토론에 서투른 근본적인 이유는 획일적, 수직적이며 튀는 개인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직된 대학 문화에 있을테니 말이다.

학우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 조금만 더 튀어 보자. 찍히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살자. 그리고 튀는 사람을 왕따시키지 말자. 그러나 튀기 전에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논리를 정갈하게 다듬자. 그리고 탁상공론에 그치지 말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기꺼이 행동하는 풍토를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