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 ‘과학기술 지도자 양성’과 ‘소수정예’의 핵심
[노벨동산] ‘과학기술 지도자 양성’과 ‘소수정예’의 핵심
  • 방승양 / 컴공 교수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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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학교 졸업생에 관한 통계이다. 실은 그전에도 알게 모르게 접하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이렇게 표로, 일목요연하게 보게 되니까 전체를 볼 수 있고 문제의 핵심을 금방 알 수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 학부 전체 졸업생이 3000명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은 우리가 소수정예 대학이니 불평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최종 학위별 비율이다. 우리 대학에 들어와 학사만 받고 사회에 나간 학생이 전체의 55%이고 석사까지 하고 일을 하고 있는 학생이 35% 이다. 특히 박사학위까지 마친 학생은 10%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실로 충격이다.

이 숫자를 풀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박사는 3000명의 10%니까 300명이다. 이것은 개교한 후 현재까지니까 8년으로 나누면 40명이다. 그런데 우리 대학은 10개 학과가 있으니 10으로 나누면 학과 당 4명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각 학과가 전국 1%의 학생을 받아서 1년에 4명의 박사만을 양성해 온 것이다. 얼마나 낭비인가! 얼마나 업무 태만인가! 우리는 1%에 드는 수재들을 받아서 엉뚱하게도 학사만, 그것도 대량생산이 아니고 소량생산해 온 것이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세상에 아무 임팩트 없는 일을 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우리 대학이 세워졌는가? 도대체 “소수정예”는 뭘 뜻하는가? 학위에 상관없이 실력이 있고 양질의 인재를 소량 배출하는 것일까? 극단적으로 말해서 우리 대학이 매년 유능한 엔지니어를 300명 배출하면 되는 것일까? 엔지니어란 많이 필요한 것이다. 아마도 300명이라는 수는 사회적 임팩트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비근한 예로 경북대 전자과 하나만으로 매년 500명의 학사를 배출하고 있고, 부산대 기계공학부 하나만으로 매년 400명의 학사를 배출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우리의 목표인 “이공계의 지도자”양성을 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이공계 지도자는 바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아닌가? 교수도 그렇고 연구소 연구원도 요새는 모두 박사학위를 요구한다. 심지어 기업에서도 박사학위 소지자를 찾는다. 기업에서도 출세하려면 박사학위 소지자가 유리하다. 학사만 가지고 밑바닥에서 사장까지 몇 십 년 걸려 올라가는 것은 이제 옛날이야기다. 과기부·정통부 장관도 거의가 박사학위 소지자이다. 그렇다. 이공계 지도자 양성이란 바로 박사학위까지 교육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표방하는 “연구중심 대학”을 위해서라도 우리 학생들이 모두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모두가 박사학위까지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가? 자기 학교 학생은 학사로 취업시키고 타교 출신들이 대학원생으로 들어와 우리 대학 연구를 한다고? 물론 그렇다고 타교 출신은 받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이미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전국 1%내에 드는 고등학교 졸업생을 받아들이고 그 반을 학사만 주고 사회에 내보낸다는 것은 우리의 업무태만이며 국가적 낭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실은 숫자가 거꾸로 되어도 신통치 않는 판이다. 즉 55%가 박사학위까지, 35%가 석사학위, 10%가 학사학위만 한다면 상황이 훨씬 낫지만 그래도 우리의 이상과는 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역시 비전의 부재이다. “연구중심대”, “소수정예”, “과학기술의 지도자 양성”을 내걸었지만 실제 뭘 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저 열심히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물론 학생들의 진학을 생각할 때 외부적인 요소도 무시 못 한다. 특히 남학생이 많은 우리 대학에서 군대 문제가 큰 영향력을 갖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목표가 있으면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과거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 대학을 책임 맡고 있는 교수들이 이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 하며 서둘러 비전을 세우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물론 각 교수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각 학과에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느 한 학과의 문제가 아니다. 역시 대학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장기적으로 대책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이다. 지금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더라도 서서히 효과가 나타난다. 이 심각한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전교가 새로운 대학을 만들 각오로 달라붙어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가 가야 할 방향, 비전을 확실히 제시하고 착실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